1906년 경남 합천군 용주면 손목리 출생으로, 유년시절 합천군 용주면에 있는 광산 김씨 재실 침호정과 대병면 오동골의 서당에서 유학을 배웠다.
이후 13세 이상의 동지들과 합천청년회를 조직해 나이가 많아 국민학교에 가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1년 동안 국민학교 6년 과정을 배울 수 있는 야간 공민학교 설치를 요구했다.
합천국민학교에 야간 공민학교가 개설된 후 공민학교에 입학해 신학문을 배웠고, 15세 일본으로 건너가 한문을 가르치면서 와세다중학교[早稻田中學校]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일본 우베일일신문사[宇部日日新聞社] 기자로 입사하여 광고국장, 편집국장을 역임한 후, 국내로 귀국해 부산에서 실업신문사를 설립 창간했다.
합천군 금융조합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했으며, 해방 후까지 3년 임기의 선출직 5선을 지냈다. 정치에 뜻을 두고 서울에서 신익희, 조병옥 등과 교류하며 1950년 5월 합천군 을구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당선 후 한국전쟁 발발하자 국회 국방분과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60년 제5대 국회의원선거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부산 동래구에서 당선되어 재경분과위원으로 활동했다. 1986년 12월 12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