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전라남도 화순(和順) 출생으로, 1944년 일본 규슈제국대학[九州帝國大學] 3년 재학중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해방 직후 귀국했다.
1948년 서울대 문리대 정치과를 졸업했으며, 195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1년 부산대학교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48년 광주의과대학 영어과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1949~1967년 전남대 문리대 교수, 1957년 전남대 정치학 과장, 1962년 전남대 문리 대학장을 역임한 뒤, 1967년 전남대 총장에 취임했다. 1970년 전남대 대학원장을 겸하기도 했으며, 총장 재직기간 동안 도서관 학생복지시설 신설 등 교세 확장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74년 9월 18일 제21대 문교부 장관으로 발탁되었으며, 취임 후 국민총화를 교육목표로 표방했다. 재임 중인 1974년 10월 30일에는 국회 문공위에서 신민당 최성석 의원이 고려대학교가 휴강 후 개강했다가 다시 휴강으로 들어간 경위를 묻자 “학원소요로 인해 문을 열고도 정상수업을 못하는 학교는 문을 닫도록 할 수밖에 없다”, “문교부는 학교가 정상화되지 못하고, 학교당국의 노력만으로 학원사태를 수습할 가능성이 없을 때에는 법에 따라 조치를 내릴 권한을 가진다”고 발언할 정도로 유신 시절 대학생들과 대립각을 가장 예민하게 세운 장관으로 평가된다.
1974년 한국지도자육성장학재단 제3대 이사장으로 취임했으며(문교부 장관으로 당연직 이사장 겸임) 1976년 9월 집무 중 장관실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1982년 사망했다. 상훈으로는 녹조소성 훈장, 국민훈장 모란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