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무는 여기(女妓) 5명이 출연하는데, 이 중 1명은 박을 친다. 북 4개를 무대 중앙에 사각으로 모아서 세워놓고, 사방색의 궁중무 의상을 입은 4명의 춤꾼이 양쪽에서 나누어 등장하여 창사를 하고, 북을 치며 춤을 춘다. 북 치는 사위는 「승무」의 북 치는 대목에서 뽑았다고 했다. 의상은 연화관을 쓰고, 좁은 소매의 붉은 색깔로 된 전복을 입었다.[尖袖朱衣, 如戰服] 창사는 ‘중중편득제군천최〇향라착수의’(衆中偏得諸君天催〇香羅窄袖衣)’로 설명되었다.
사고무는 1916년 다동기생조합의 하규일이 창작하여 초연하였고, 다동조합 기생들이 주로 추다가 1920년대에는 대동권번, 한성권번(이전의 광교기생조합)도 추었다. 궁중무의 기본 구성에 민속무인 승무의 북치는 대목을 섞어 구성하였다. 일제강점기 기생의 엽서 사진에 다양한 장면이 촬영되었고, 김천흥도 자주 보았다는 점으로 보아 1930년대까지 추어졌던 춤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전승되지 않는다.
「사고무」의 안무는 「무고」를 변형하여 창작한 것이다. 「무고」처럼 북을 중앙에 하나 뉘어놓는 것이 아니라 중앙에 네 개의 북을 세워서 걸어 놓았고, 네 개의 북과 사방색 의상을 입은 것은 안무에 사방위 개념을 반영한 것이다. 차례로 위치를 바꾸며 북을 치고 춤을 추었다고 했는데, 이는 자기 방위의 북을 치다가 다른 방위의 북을 친다는 것이고, 이때 원의 형태로 돌아가게 되므로 회무(回舞)하게 된다. 사고무는 기생조합 혹은 권번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궁중무를 기본 틀로 하여 극장 무대에 맞게 새롭게 재구성 내지 창작한 춤이며, 궁중무가 근대 시기에 민간에서 속화(俗化)되는 과정을 보여준 대표적 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