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석가여래상 높이 125㎝, 아미타여래상 높이 103.5㎝, 약사여래상 높이 99.3㎝. 2006년 2월 개금불사 과정 중 불상 내부에서 발원문, 중수문, 후령통 등의 복장 유물이 발견되었다. 발원문과 중수문을 통해 1659년에 조각승 녹원(鹿元)이 이 삼불좌상을 제작하였고 1703년 금문(金文)이 중수하고 도금하였던 내력이 밝혀졌다.
항마촉지인을 한 석조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여래좌상, 약사여래좌상이 협시한 삼세불상이다. 석가여래상은 협시인 좌우 여래상들보다 크게 조각하여 주존불임을 강조하였다. 조성 발원문에 따르면 대화원 녹원, 편수(片手) 명준(明峻), 학륜(學崙), 각인(覺仁) 등이 불상 제작에 참여하였고, 승려와 지역민으로 추정되는 100여 명의 시주자에 의해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우두머리 조각승인 녹원은 17세기 중엽경에 활동한 인물로서 장안사 불상 조성에 처음 이름이 등장한 이후 1664년에 서울 지장암 목조지장보살좌상, 1673년에 자수와 함께 합천 해인사 명부전 목조지장시왕상(원 봉안처는 경상남도 진해 성흥사)을 제작하였다.
석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규격에서 차이가 있으나 신체 비례, 얼굴, 옷주름 표현 등은 매우 유사하다. 등신대의 크기에 건장하고 자비로운 모습이다. 몸에 비해 머리는 큰 편이며 어깨와 무릎이 넓고 당당하여 안정감 있는 비례를 보인다. 얼굴은 이마가 넓은 방형의 얼굴에 긴 눈과 큰 코 등 이목구비가 크고 또렷하여 강인하면서도 자비로운 인상을 준다. 대의는 각 존상마다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착의법을 보이며 옷주름도 굵고 힘이 있는 점이 특징이다.
석가여래상은 변형 편단우견식 대의와 꽃잎형으로 접힌 승각기를 입고 항마촉지인을 취하였는데 왼손은 무릎 위에서 손바닥을 보이며 엄지와 중지를 구부렸다. 낮은 육계에 정상계주와 중간계주가 있으며 큼직한 눈, 우뚝한 콧날, 도톰한 입술에 부드러운 미소가 남아 있어 자비로운 모습이다. 좌우에 협시한 여래상들은 편삼 위에 대의를 입은 변형 통견식 착의법이며 수평의 승각기를 입어 본존불상과 차별화하였다. 수인도 다르게 표현하였는데 약사여래상은 양손을 무릎 위에 두고 엄지와 중지를 구부린 모습이고 아미타여래상은 오른손은 가슴 위로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둔 채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다.
이 삼불좌상은 불석(佛石)을 사용하여 제작된 석조여래상이다. 불석제 불상은 1655년에 칠곡 송림사 석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2009년 지정)을 비롯한 17세기 중엽 경부터 등장하는 재료로서 기장 장안사 삼불좌상은 비교적 빠른 시기에 해당하는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장안사 삼불좌상은 측면 표현이 두터워 둔중해 보이지만 얼굴이나 옷주름의 표현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섬세한 조형성을 보인다.
1659년에 제작된 기장 장안사 석조석가여래삼불상은 17세기 중엽 경 경상도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조각승 녹원에 의해 제작되었다. 등신대 규격에 근엄하면서도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며 단순하면서도 부드러운 옷주름 등에서 녹원의 불상만이 가지는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석가여래삼불좌상은 녹원의 작품 가운데 비교적 초기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며, 불석제 불상 가운데 이른 시기에 해당되는 작품으로서 17세기 불교조각사와 불상 재료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