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불상의 높이는 비로자나불상 124.6㎝, 문수보살상 108.1㎝, 보현보살상 102.2㎝. 지권인을 취한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와 보현보살상이 앉아 있는 삼존불상이다. 『중수도금기(重修塗金記)』에는 1638년 선덕(禪德)과 해민(海敏)이 비로전을 중창하며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을 조성하였고 1661년 해민이 화주가 되어 중수하였음을기록하였다. 또한 범어사 관음전 관음보살상의 대좌 묵서명에 1722년 관음전 관음상을 새롭게 조성하면서 같은 해 조각승 진열을 비롯하여 청우, 청휘, 관성, 옥총 등이 비로전 불상들도 도금 ·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은 등신대 규격에 자비로운 모습이다. 삼존상은 여래와 보살의 도상적인 차이는 있지만 신체 비례와 얼굴, 옷주름 표현 등에서 매우 유사하다. 몸에 비해 머리가 큰 편이나 어깨와 무릎이 알맞게 넓어 안정적인 구도와 신체 비례를 보이며 부드러운 얼굴 표정, 왼쪽 무릎 위를 넓게 감싼 옷자락 등이 주목되는 특징이다.
비로자나불상은 지권인의 손 모습을 취하고 결가부좌하였다. 머리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 정상계주와 중간계주가 있고 턱이 좁은 방형의 얼굴은 넓은 미간, 오뚝한 코,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 입 등을 표현하여 부드러운 표정이다. 착의법은 변형 통견식으로 편삼 위에 대의를 입었으며 밋밋한 가슴에는 수평의 승각기가 보인다. 승각기 아래 편삼과 대의가 교차하는 U자형 주름과 왼쪽 무릎을 감싼 옷자락의 주름 폭이 넓어 특징적이다.
좌우 보살상들은 화려하게 장식된 큰 보관을 쓰고 어깨에 늘어뜨린 머리카락[寶髮], 목걸이 장식, 양손으로 받쳐 든 연화 가지 등의 지물로 여래상과 차별화하였다.
이 비로자나삼존불좌상은 진열의 다른 작품들과 신체 비례에서 차이를 보이나 얼굴과 왼쪽 무릎을 넓게 감싼 옷자락 표현은 1713년 고양 상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같은 해에 제작된 범어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상 등과 매우 유사하여 중수 과정에서 진열의 조각적 특징이 반영되었다고 판단된다. 진열은 1565년 향엄이 제작한 목포 달성사 지장보살상도 중수하였는데, 달성사 불상 역시 얼굴 표현은 진열의 작품들과 닮아 진열은 중수 작업을 할 때 본인만의 개성으로 얼굴이나 신체 일부를 바꾸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비로자나삼존불좌상의 목조 표면에 흙을 덧발라 보완한 제작 기법에서도 드러난다.
한편 비로전 비로자나삼존불좌상의 중수를 주도한 진열은 수화승으로 1706년 전남 곡성 서산사 관음보살좌상(원 관음사 대은암)을 처음 조성하였다. 이후 1707년 경남 함양 도솔암 목조관음보살좌상, 1713년 고양 상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관음보살상(원 고양 노적사), 1718년 경남 양산 통도사 목조사천왕상, 1722년 경남 밀양 여여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원 범어사 적조암) 등을 조성하였다. 서산사 관음보살좌상은 2013년에, 도솔암 목조관음보살좌상은 2010년에, 여여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200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범어사 목조비로자나삼존불좌상은 1638년에 참고문헌# 처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1722년 진열에 의해 개금중수된 작품이다. 신체 비례, 얼굴형, 착의법 등에서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보이며 얼굴 세부 표현, 흙을 덧발라 마무리한 제작 기법 등에서는 진열만의 조형성이 돋보인다. 또한 조선 후기에 건립된 비로전이 많지 않고 큰 규격의 비로자나삼존불상 제작 사례도 드물다. 따라서 비로전 비로자나삼존불좌상은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와 18세기 대표적 조각승 진열, 그리고 불상의 중수 과정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