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보현사 십육나한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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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유물
국가유산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보현사 영산전(靈山殿)에 봉안할 목적으로 1882년에 제작한 십육나한도.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강릉 보현사 십육나한도(江陵 普賢寺 十六羅漢圖)
분류
유물/불교회화/탱화/나한조사도
지정기관
강원특별자치도
종목
강원특별자치도 시도유형문화유산(2014년 03월 07일 지정)
소재지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오대산로 176 (진부면, 월정사성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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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보현사 영산전(靈山殿)에 봉안할 목적으로 1882년에 제작한 십육나한도.
개설

2014년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무명 바탕에 채색. 세로 99.2㎝, 가로 193㎝. 월정사 성보박물관 소장. 십육나한은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과(阿羅漢果)에 이르렀으나 미륵(彌勒)이 올 때까지 열반(涅槃)에 들기를 미룬 채 이 땅에 남아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소임을 맡은 16명의 불제자이다. 십육나한은 『불설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佛說大阿羅漢難堤密多羅所說法住記)』에 근거한다. 나한은 십육나한, 십팔나한, 오백나한으로 무리를 이루어 신앙화 되는데, 그 중 십육나한은 나한의 성격이 가장 집약되어 있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보현사 십육나한도는 십육나한의 특성이 잘 반영된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현재 두 폭만이 남아 있다.

내용

가로로 긴 화면에 산수를 배경으로 하여 각기 다섯 명의 나한과 권속을 표현하였다. 한 폭은 깊은 산 속, 폭포에서 흘러내린 물로 둘러싸인 암석 위에 다섯 명의 나한이 서 있거나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들은 모두 동일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곳에서는 용이 솟아나오고 있으며 이를 나한들이 호리병 안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나한은 가뭄에 비를 내릴 수 있는 신통력을 가지는데, 이 그림에서는 이러한 나한의 신통력을 물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용을 부르는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다른 한 폭은 화면 중앙에 턱을 괴고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는 나한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두 명의 나한이 앉아 경전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우측에는 또 다른 두 명의 나한이 서로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경전을 읽고 있는 존자들의 뒤에는 시자(侍者)가 나한이 부른 용을 호리병으로 유인하고 있으며 동자가 놀란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다.

불화승(佛畵僧) 석옹당 철유(石翁堂喆有)가 주관하여 그렸고 밑그림은 축연(竺衍)과 철유가 나누어 그렸다. 완형(玩炯), 인휴(仁休) 등도 동참하였다. 철유와 축연은 근대기의 대표적인 화사인데, 이 그림은 그들이 화업 초기 화풍을 형성하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특징

보현사 십육나한도는 한 화면에 등장하는 여러 존자들이 유기적으로 무리를 이루는 소위 ‘군집식 구도’를 취하고 있다. 조선시대 십육나한도가 대부분 존자들을 개별적으로 표현했던 것과 비교해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작품이다. 이러한 화면 구성 방식은 이후 문경 김룡사 십육나한도(1888), 대구 은해사 백흥암 십육나한도(1897), 해남 대흥사 십육나한도(1901) 등으로 계승된다. 십육나한을 비롯하여 권속과 산수, 경물 모두 표현이 사실적이며 서양화법 중 음영법이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있어 근대기 불화의 양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조선 말기 십육나한도 중 화면 구성과 표현에서 개성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품인 동시에 근대기의 대표적 불화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조선후기 십육나한 도상의 계승」(신광희, 『동악미술사학』10, 동악미술사학회, 2009)
「고산당 축연의 불화 연구」(최엽, 『동악미술사학』5, 동악미술사학회, 2004)
「화승 석옹철유와 고산축연의 생애와 작품」(김승희, 『동원학술논문집』4, 한국고고미술연구소, 2001)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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