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문효공과 정경부인 영정은 전북특별자치도 무주 백산서원 사당에 봉안된 조선 전기의 문신 문효공 하연과 정경부인 성주이씨의 초상화이다. 시호가 ‘문효’인 하연과 그의 부인 초상화로 19세기 이모본이다. 문효공 사후 1467년에 그의 아들 하우명이 양친의 영정을 직접 그렸다. 이후 이모본들은 하우명이 그린 초상을 근거로 제작되었다. 그림 속 문효공은 청단령의 시복차림에 각대를 두르고 오사모를 쓰고 있다. 정경부인은 조바위 형태의 관모를 쓰고 비단 무늬의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다. 이 영정은 조선 전기에 유행한 부부 초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의
19세기에 제작되어 전북특별자치도 무주 백산서원 사당에 봉안된 조선 전기의 문신 문효공 하연(河演)과 정경부인 성주이씨의 초상화.
개설
내용
1708년(숙종 34) 문의에 우록(友鹿) 영당이 완성되어 진영을 봉안하였고, 1825년 우록영당 진상을 개모하였다. 우록영당은 1842년(헌종 8)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718년 진주 종천서원에 제향(躋享)하였고, 1726년(영조 2) 안악에 숙청당(肅淸堂)이 완성되어 진영을 봉안하였다. 1786년(정조 10) 장연(長淵)에 반곡서원(盤谷書院)이 완성되어 안악의 숙청당의 진영을 반곡서원으로 이봉하였다. 1819년(순조 19) 타진당을 영천서원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건하여 영정을 봉안하였다.
따라서 문효공 부부 초상은 하우명이 그린 원본을 소장한 합천의 신천서원을 비롯하여, 문의 우록서원, 진주 종천서원, 장연 반곡서원 등에서 그 이모본을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무주 백산서원의 타진사는 1821년(순조 21) 창건하여 순조가 타진사 액호를 하사하여 문효공과 정경부인 성주이씨의 영정 및 위패를 봉안하였다. 그러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이하응)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으며, 이후 1905년 유림들에 의해 다시 복원되었다. 따라서 현재 백산서원에 소장된 문효공 부부의 초상도 1821년 초상을 봉안할 무렵 그려진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일본의 덴리대학[天理大學]에 소장된 『조선명현초상화첩(朝鮮名賢肖象畵帖)』 총 4권 중 제1권에는 조선시대 명현들의 초상화 290여 점과 문효공 부부 초상이 반신상으로 함께 실려 있다. 이 초상은 무주 백산서원 초상의 복식과 인물 묘사가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백산서원 초상의 모본(模本)은 바로 『조선명현초상화첩』에 근거할 개연성이 높다.
특징
정경부인 성주이씨는 문효공의 나이를 고려할 때 50대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정경부인은 위가 뚫린 조바위 형태의 관모를 쓰고 입잠을 세워 꽂았으며, 비단 무늬가 있는 저고리와 치마를 입었다. 가슴에는 붉은색 대를 둘러 두 줄로 길게 늘어뜨렸다. 겉옷은 치마 아래까지 늘어진 포를 입고 목에서 소매까지 걸치는 숄(shawl) 형태의 영건을 둘렀다. 부부 초상 배경에 안상을 배치하고 그 위로 향로, 화분 등을 배치한 것은 조선 전기 초상화의 특징이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경재선생문집(敬齋先生文集)』권4, 5
- 『초상화 연구: 초상화와 초상화론』(조선미, 문예,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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