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농산물 가격정책은 일관되게 국민경제 전체의 안정화라는 목표와 농산물을 소비하는 주체 측의 조건 및 이해관계 등을 선차적으로 고려한 결과물로, 수십 년에 걸쳐 정착된 한국농정의 기본 흐름들 중 하나가 바로 저농산물가격정책이다.
이러한 기조는 1950년대 중반 이후 이루어진 미국 잉여농산물의 도입(원조)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이는 미국 측 과잉생산물의 처분이나 국내 식량부족 해결이란 차원의 조치이기도 했지만, 환율 인상으로 이어질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활용된 방안이기도 했다.
1950년대는 원조당국의 요청에 따라 정부가 물가고를 공정 환율에 반영시켜야 하는 시기였고, 환율 인상은 여타 원조 자금 및 물자의 감소 효과, 공업부문 수입원자재 가격의 인상 효과 등을 불러올 수 있었다. 따라서 정부는 농산물 대량 도입에 의존해 물가지수 산정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농산물가격을 억제하고자 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농산물가격 억제가 수출공업화 내지 외향적 공업화라는 정부의 경제개발 전략에 부합하는 정책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이것은 농산물가격이 인상될 경우 그것이 도시지역 물가와 임금노동자들의 생활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고, 다시 공업부문 생산비용 상승의 요인이 되어 결국 대외 수출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상품이 그 만큼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계산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정부는 이런 가운데서도 1977년경부터 보호 아래 있던 농산물시장을 대외적으로 개방하는 방침을 확정 · 시행해 외국산 농산물의 수입을 점증시켜갔다. 이는 우월한 생산력을 토대로 저가에 대량 생산되는 해외 품목을 수입함으로써 전반적인 국내 물가안정을 기하고, 아울러 임금 및 원자재비용을 절감하고자 하는 정부와 기업 측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정부가 농산물 가격의 지지를 위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961년 이후 「농산물가격유지법」의 시행, 1968년 이후 「이중곡가제」의 시행과 1970년 이후 양곡관리 특별회계의 운용을 통해 상대적으로 고미가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도 수출공업화의 논리와 물가안정 · 재정안정의 논리 등에 밀려나면서 점차 제한적인 의의마저도 잃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자유무역과 경쟁의 원리에 입각한 해외의 압력까지 가세해 농산물시장 개방의 추세가 대폭 강화되었고, 「이중곡가제」는 당초의 취지를 상실해 가는 조건 변경 끝에 2005년 폐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