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사태 (KBS)

현대사
사건
1990년 3~5월, 언론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한 KBS 노동조합의 파업 농성 사건.
이칭
이칭
KBS 4월투쟁, KBS 방송민주화투쟁
사건/사회운동
발생 시기
1990년 3월 3일
종결 시기
1990년 5월 17일
발생 장소
KBS(한국방송공사)|MBC(문화방송)
관련 국가
대한민국
관련 단체
KBS 노동조합|MBC 노동조합
관련 인물
서영훈|서기원|노태우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KBS사태는 1990년 3~5월, 언론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한 KBS 노동조합의 파업 농성 사건이다. 노태우 정부는 KBS의 민주화에 불만을 품고 당시 KBS 노동조합에 유화적이던 한국방송공사 사장 서영훈을 경영상 문제를 이유로 1990년 3월 초 해임하고 4월 초 후임 사장으로 서기원을 선임하였다. 이에 KBS 노동조합은 비상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서기원의 출근을 저지하는 한편 파업 농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방송사에 공권력이 투입되면서 다수의 노동조합원들이 연행되었고, 결국 5월 중순 노동조합이 제작에 복귀하면서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정의
1990년 3~5월, 언론민주화 과정에서 발생한 KBS 노동조합의 파업 농성 사건.
배경

1987년 유월항쟁과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는 본격적인 민주화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동안의 통제와 억압에서 벗어나 사회 각 방면에서 분출하는 민주화의 요구 속에서 언론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언론민주화 과정에서 우선 각 언론사별로 노동조합이 속속 결성되었다. KBS(한국방송공사)의 경우 1988년 5월 노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노동조합 설립 이후 KBS 제작진은 공정방송을 위해 노력하였고, 1988년 11월 한국방송공사 사장으로 선임된 서영훈 역시 ‘최초의 민선 사장’으로서 노사 간 대화와 타협을 계속해 나갔다. 하지만 1990년 1월 소위 ‘3당 합당’으로 여소야대 구도를 깨고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킨 노태우 정부는 그동안 권력에 대한 비판과 금기에 대한 도전을 강화해 나가던 KBS를 직접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경과 및 결과

먼저 2월부터 감사원이 KBS 특별감사에 나섰다. 그리고 KBS가 노사 합의로 지급한 법정 수당이 잘못되었다며 공보처에 서영훈 등 KBS 고위 간부에 대한 후속 조치를 요구하였다. 결국 KBS 이사회는 서영훈의 면직을 결정하였고, 1990년 3월 8일 서영훈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KBS 노동조합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집회와 농성을 이어 나갔다.

1990년 4월 3일 KBS 이사회는 서기원 서울신문 사장을 신임 사장으로 선출하였다. 정부기관지 사장으로서 노동조합의 파업을 진압한 전력을 가진 신임 사장에 대해 KBS 노동조합은 더욱 거세게 반발하였다. 노동조합은 KBS 비상대책위원회를 확대 개편하였다. 또 ‘서기원 출근저지 특별감시조’를 편성해 4월 11일 서기원의 출근을 저지하였다.

다음날 서기원은 청원경찰 30여 명과 실장, 국장 200여 명의 호위하에 사장실로 진입하였다. 이어 경찰 백골단 300여 명이 사내에 진입해 노동조합원들을 폭행하고 117명을 강제로 연행하였다.

공권력 난입에 맞서 KBS 노동조합은 4월 13일 조합원 4,000여 명이 참여한 전국비상사원총회를 개최하고, 서기원 퇴진과 구속자 석방 시까지 송출기술부를 제외한 전원의 방송 제작 거부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4월 20일 밤 다시 전경 3,000여 명을 KBS 본관에 투입해 조합원 333명을 연행하였다.

5월 1일 MBC(문화방송) 노동조합은 KBS에 대한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며 즉각적인 연대 제작 거부에 돌입하였다. KBS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MBC로 사무실을 옮겨 5월 2일 양 방송사 노동조합이 함께 ‘구속 동지 석방 촉구 및 노태우 정권 규탄 대회’를 개최하는 등 연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5월 4일 KBS 직원의 MBC 출입이 봉쇄되었고, 이날 밤 경찰 병력 100여 명이 MBC 노동조합 사무실로 들어가 전영일 KBS 비대위 위원장을 연행하였다.

이러한 정부의 강경 탄압 속에서 양 방송사 노동조합의 투쟁도 점차 힘을 잃었다. 결국 MBC 노동조합이 5월 7일 제작에 복귀하였고, 5월 17일에는 KBS 노동조합도 제작 복귀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KBS 노동조합원 11명이 해직되었다. 반면 서기원은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때까지 KBS 사장 자리를 지켰다.

의의 및 평가

비록 KBS사태는 KBS 노동조합에 큰 상처를 남긴 채 마무리되었지만, 1987년 이후 전개된 언론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이후 민주화운동의 밑거름이 될 수 있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전국노동조합협의회백서발간위원회, 『전국노동조합협의회 백서』(책동무 논장, 2003)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노조투쟁과 탄압의 역사』(현장에서 미래를, 1996)
KBS노동조합, 『KBS 1990년 4월 방송민주화투쟁 백서』(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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