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안 부결 반대운동 ( )

목차
관련 정보
현대사
사건
1952년에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가 국회를 압박하여 결과를 번복하기 위해, 관제 조직들을 동원하여 전개한 대중집회와 시위.
이칭
이칭
국회의원 소환운동
사건/사회운동
발생 시기
1952년 2월 전후
종결 시기
1952년 7월 4일
관련 국가
대한민국
관련 단체
(원외)자유당|대한청년단|국민회
관련 인물
이승만|이범석
내용 요약

개헌안부결반대운동(改憲案否決反對運動)은 1952년에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가 국회를 압박하여 결과를 번복하기 위해, 관제 조직들을 동원하여 전개한 대중집회와 시위이다. 1952년 1월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국회에서 큰 표 차이로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는 이를 번복하기 위해 관제 조직들을 동원하여 국회의원 소환, 국회 해산 등을 주장하는 집회와 시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1952년 5월 25일 임시 수도 부산 일대에 계엄령이 선포되는 부산정치파동으로 이어졌다.

목차
정의
1952년에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가 국회를 압박하여 결과를 번복하기 위해, 관제 조직들을 동원하여 전개한 대중집회와 시위.
배경

1950년 1월 민주국민당 주도로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제출된 이래 국회 내의 내각책임제 추진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이승만 정부 사이의 갈등과 대립이 커졌다.

1950년 1월에 제출된 내각책임제 개헌안은 국회 내 친이승만 세력인 대한국민당 등의 개헌반대운동으로 부결되었지만, 개헌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1950년 5 · 30총선 이후 2대 국회에서 더욱 증폭되었다. 특히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개헌 문제를 둘러싼 이승만 정부 및 친이승만 세력과, 국회 내 내각책임제 추진 세력 간 갈등이 격화되었다.

경과 및 결과

먼저 1951년 11월 30일 이승만 대통령은 신당(자유당) 창당 작업을 진행하면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을 정식 공고하였다. 하지만 이 개헌안은 1952년 1월 18일 163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한 국회 표결에서 찬성 19표, 반대 143표, 기권 1표로 부결되었다.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국회에서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와 친이승만 세력은 한편으로는 적극적으로 국회의원들을 포섭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안 반대 국회의원들을 소환하자는 관제운동을 전개하였다.

국회의원 소환운동을 이끈 것은 (원외) 자유당대한청년단, 국민회 등이었다. 이들 주도로 1952년 2월 전후 전국 각지에서 전단 살포와 연판장 작성, 각종 시민 · 군민대회 등의 형태로 국회의원 소환운동이 소위 ‘민의’를 앞세워 전개되었다.

반면 국회 내 내각책임제 개헌 추진 세력들은 국회의원 소환운동을 대의정치를 부정하고 국회 직능을 무시하는 헌법 유린 행위로 비판하면서, 1952년 4월 16일 대통령을 행정권에서 완전히 분리시킨 순수한 내각책임제 개헌안을 제출하였다. 이 개헌안 제출 당시 서명한 국회의원만 국회 재적의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123명에 달하였다. 그만큼 내각책임제 개헌안의 통과 가능성은 높았다.

이에 이승만 정부와 친이승만 세력들은 다시 한번 국회의원 소환운동을 재개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내각책임제 개헌에 찬성하는 국회의원들을 규탄하는 집회와 시위가 열렸고, 1952년 4월 말부터는 국회해산 요구까지 나왔다. 이와 같은 국회의원 소환 및 국회해산을 요구하는 운동은 1952년 5월 24일 민중자결단과 땃벌떼, 주1 등이 등장한 민중자결선포대회에서 절정에 달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5월 25일 임시 수도 부산 일대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헌병들이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는 부산정치파동이 발생하였다. 부산정치파동의 와중에서도 국회를 주2 집단으로 규정하고 국회의원 소환, 국회해산 및 총선거 실시 등을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계속되었다. 결국 1952년 7월 4일 국회는 이승만 정부와 타협하여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한 소위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키게 된다.

참고문헌

단행본

서중석, 『이승만과 제1공화국: 해방에서 4월혁명까지』(역사비평사, 2007)
김수자, 『이승만의 집권 초기 권력기반 연구』(경인문화사, 2005)

논문

이혜영, 「제1공화국기 자유당과 ‘이승만 이후’ 정치 구상」(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김일영, 「이승만 통치기 정치체제의 성격에 관한 연구」(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1)
주석
주1

1980~1990년대에 집회ㆍ시위 현장에서 시위대를 검거하는 체포 전담 경찰관들을 이르던 말.    우리말샘

주2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인형.    우리말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