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노동자 문화운동은 1980년대 학생운동 내의 문예서클 출신자들이 주도했다. 이들은 사회변혁운동은 노동운동의 발전을 통해 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직접 노동현장에 취업하거나, 산업중심지나 주요 도시에 전문노동문화단체를 만들어 노동자교육 및 강습활동을 통해 노동자 문화운동의 발전을 이뤄내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특히 이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노동운동이 활발해지자, 전국 각지에서 현장노동자 강습활동을 통해 노동자들과 조직적·인적으로 긴밀하게 결합했다. 이들은 풍물·노래·미술·영상·연극·문학·춤 등 다양한 문예 양식적 활동을 통해 노동자의 문화적 요구와 결합했다. 그 결과 전문노동자문화단체가 결성되었고, 이들에 의해 발굴되어 노동현장의 문화를 주도하는 현장문화일꾼들이 형성되었다.
이런 활동과정에 결성된 ‘한국문화운동연구소(한문연)’는 자주·민주·통일에 민중주체 민족문화론, 공동체론을 문화이념으로 선언하고, 1980년대 초 ‘생활문화운동’이라는 문화운동관을 도입해 1990년대 초까지 현장에 접목시키려했다.
이러한 ‘한문연’의 생활문화론을 비판하면서 노동자 문화운동의 정치적 실천논쟁을 주도적으로 전개한 것이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노문연)’이었다. 이 조직은 1984년 창립된 ‘민중문화협의회’가 1987년 2월 ‘민중문화운동연합’으로 발전했다가 1989년 9월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으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노문연’은 강령을 통해 “노동자의 당파성에 뿌리박은 과학적 문예운동의 발전을 위한 조직적 토대를 마련해 사회변혁운동의 진전에 기여”하고자 했으며, 문예운동의 과학화를 내걸고 노동자문예의 이론화와 정책개발에 힘을 기울였다.
이들은 기관지 『전망과 건설』을 통해 노동자의 당파성에 입각한 현실주의 노동자문화예술정신을 공개적으로 밝혀 나갔다. 또 ‘노문연’은 ‘전국문화운동예술연합’ 건설을 통해 문예운동역량을 과학적으로 배치해 전국적 계획을 갖고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노문연’은 전문성 및 과학적 운동성의 동시적 확보를 절실한 과제로 정립하고, 당시 변혁운동의 과제에서 주어지는 문예운동의 임무를 실천하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