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1990년대 초반 본격화된 한국 자본주의의 산업구조조정은 국제경제 질서의 움직임에서 촉발되었다. 미·일간의 국제수지불균형의 심화에서 시작된 통상마찰은 ‘엔고’와 함께 ‘3저 호황’을 창출했고, 이로부터 한국 등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은 일본과 경쟁적 관계에 있는 산업분야에서 대미수출시장을 급속히 확대했다.
그러나 1988∼1989년 들어 한국 경제는 성장 기조가 위축되었다. 가격변수를 통한 조정(원화의 평가 절상)에 따른 수출부진, 관세인하, 상품 및 서비스시장 개방 등에 따른 수입의 급증으로 고축적의 기반이 무너지고 흑자기조가 붕괴될 조짐까지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국제적 산업구조의 재편으로 일본이 생산 공정을 아시아 지역으로 이전시키는 등 해외생산을 본격화함에 따라, 동아시아 공업국들은 상대적으로 중화학공업 중심의 수출지향적 축적구조를 더욱 강화해 나갔다.
산업구조조정은 첨단산업 부문에 대한 국가의 정책지원과 독점적 대자본의 대규모 투자를 한 축으로 하면서, 주요 수출산업에서의 고부가가치화 투자와 이를 위한 자동화·합리화투자의 증대로 진행되었다.
동시에 경쟁력이 약한 산업의 업종전환, 해외진출, 사양산업 정리를 다른 축으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석탄산업이나 농업부문은 지속적인 몰락을 감수해야했고, 부품·소재의 생산이나 조립가공 공정을 담당하는 중소자본의 하청계열화가 진행되었다. 한편 이러한 분업 연관에 포섭되지 않는 많은 중소자본의 도산·휴폐업·업종 전환과 이에 따른 고용 불안정화도 산업순환의 흐름 속에서 표면화되었다.
반도체·컴퓨터·생명공학·신소재·광통신·로보트·우주·항공 분야에서는 국가의 프로젝트별 지원계획과 외국 자본과의 직·합작 투자를 통한 기술도입이 본격화되었고, 기계·전기전자·자동차·화학 등의 분야는 성장산업으로 분류되어 고기술·고부가가치 품목으로 생산의 중심을 옮기기 위한 자동화·생력화 투자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신발·섬유·완구·의복 및 일부 가전제품 등의 분야는 업종전환 및 경영다각화, 해외투자가 시도되었다.
개방국면의 전면화 속에서 진행된 산업구조조정은 한편으로 국내 대자본들에게 수출경쟁력 강화와 동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국제분업구조 속에서 지위상승을 도모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술종속이 더욱 구조화 되었고, 정보·통신, 기타 고도 3차 산업분야 및 금융·보험 등의 분야에서는 외국 자본의 지배망 구축이 진행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