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현대엔진 노동자들이 파업에들어가자, 이를 전국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해 1988년 3월 5일 ‘노동조합탄압저지 전국노동자공동대책협의회(전국공대협)’가 구성되었다.
‘전국공대협’은 4월 2∼3일과 5월 1일 전국규모의 집회를 주도하면서 노동운동탄압저지투쟁을 벌였고, 하반기에는 노동법개정투쟁을 벌였다. ‘전국공대협’은 정세에 신속하게 대처하고 사업의 추진력을 갖기 위해 상설적인 ‘공동투쟁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1988년 6월 7일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전국노운협)’를 결성했다.
‘전국노운협’은 “전국적이며 공개적인 상설공동체, 민주노조운동을 지원·강화하고 민주노조운동보다 앞서가는 자주적인 운동체, 노동운동단체 전국단일대오의 과도기적 형태”로 성격을 규정하고, “노동운동의 발전을 도모하고,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민주·통일과 노동해방을 실현하는 것”을 활동 목표로 삼았다.
또한 민주노조의 공동임투 지원, 노동운동탄압공동분쇄투쟁, 현장투쟁 지원 등의 사업을 벌였으며, 노동법개정 공청회를 개최하고 노조대표자들과 함께 1988년 11월 13일 첫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 전국노동조합협의회건설을 위한 정책기획과 대중토론 등을 조직했다.
‘전국노운협’은 신규노조결성, 노조민주화사업, 선봉대 조직 등과 같이 노동조합 차원에서 할 수 없는 사업들을 담당했으며, 이러한 활동은 민주노조운동이 지역을 넘어 전국 조직으로 성장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전국노운협’은 내부적으로 조직 위상을 둘러싸고 입장의 차이가 있었다. 1990년 하반기 들어 일부는 ‘전국노운협’을 선진노동자 중심의 조직으로 재편할 것을 주장했고, 다른 일부는 공동투쟁을 위한 협의체로 위치해야 한다며 탈퇴해 1990년 11월 ‘전국노동단체연합(전국노련)’을 결성했다. 그리고 이 중 일부는 다시 합법정당건설 추진세력으로 분화되었다.
축소된 ‘전국노운협’과 ‘전국노련’은 활동 방향에 차이가 있었지만, 전노협의 지원과 공동활동을 지속했다. 하지만 1993년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결성 과정에서 노동운동단체의 참여가 배제되었고, 이들 노동운동단체는 새로운 활동 방향을 모색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