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 10월14일 전라남도 해남 출생으로, 전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해남군청, 해남면사무소, 해남군 금강수리조합에서 근무했으며,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해남군 지부위원장, 대한독립촉성청년연맹 해남군 지부위원장, 대동청년단 해남군 단장을 역임했다.
1948년 제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해남 을 지역구에 대동청년단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어 외무국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남교회 장로, 화순교회 전도사로 활동했으며, 목포 영흥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이후 광주로 이주해 양림교회의 장로로 취임해 오랫동안 근무했다. 1953년 11월부터 1954년 8월까지 광주YMCA의 총무로 활동했다.
1978년 광주NCC 인권위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반 유신 활동과 인권운동에 앞장섰으며, 구속인사나 구속학생들을 위해 법원, 검찰, 경찰서를 오가며 구명운동을 전개했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지도부로 참여해 군사정부에 저항했으며, 이로 인해 지명수배를 받았다. 1980년 10월 22일 사망했으며, 5·18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