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2월 13일 서울 서대문 출생으로, 평양신학교를 수료했다. 1937년 무산아동 교육을 위해 금릉원학원(金陵院學院)을 설립하고 원장에 취임했다. 1942년 한국신학교를 졸업했으며, 김포농촌보육소를 설립해 소장으로 활동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경기도 김포에서 당선되었다. 제헌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해 운영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특별재판관으로 활동했다. 원래 반민특위 재판관이 아니었으나, 박흥식의 보석에 항의해 김장렬과 홍순옥이 사임하자, 후임으로 조옥현과 함께 특별재판관으로 선출되었다. 반민특위 재판관으로 이완용 손자의 재판을 진행했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 경기도 김포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0년 9월 한국사회사업연합회의 4대 회장으로 취임해 1961년 6월까지 활동했다.
정계 은퇴 후 제헌동지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1956년 제3대 국회의원 시절 미국에서 열린 MRA(세계도덕재무장) 세계대회 초청 이후 맺은 인연으로 1963년부터 MRA 한국본부에서 활동했으며, 1964년 한국본부 대표에 임명되었다. 대표 재임 시절 ‘88 MRA 세계대회’를 1988년 9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개최했다.
1969년 12월 17일 정부는 사망한 제헌국회의원 60명, 생존한 제헌국회의원 94명 등 154명에게 대한민국 정부의 기틀을 조성했다는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고, 그 대상자로 훈장을 받았다.
저서로는 1970년 『위대한 인간의 길』, 『위대한 미래의 창조』, 『나의길, 도덕의 길』이 있다. 2004년 7월 30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