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2월 19일 강원도 강릉 출생으로, 유년시절 한문을 수학하고 신리공립보통학교와 강릉농업학교를 졸업했다. 1928년 3월부터 1937년 4월까지 주문진 청년회장, 1939년 2월부터 1940년 10월까지 주문진 농촌진흥회 회장을 역임했다.
해방 후 1947년 4월부터 1948년 4월까지 전국민족대표자대회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으로 강원도 강릉을 지역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1948년 11월에는 국회 내 98명의 의원들과 함께 미군주둔을 요청하는 결의문 채택에 동참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강원도 강릉을 지역에 출마해 민주국민당 소속으로 당선되었다.
1953년 3월부터 6월까지 자유당 의원부 운영위원장, 1953년 7월부터 1954년 1월까지 자유당 중앙당 어민부장, 1954년 2월부터 7월까지 자유당 강릉지구당 위원장을 역임했다.
1954년 7월 궐석 중이던 제4대 강원도지사로 임명되어 1956년 5월 임기를 마쳤다. 강원도지사 시절 지위쇄신, 도정강화, 교육재건, 전후복구, 산업진흥, 산림녹화, 치안확보의 도정방침을 확정해 운영했다.
강원도지사를 마치고 1956년 5월부터 1959년 4월까지 제5대 경기도지사를 역임했으며, 재임 당시 기강확립, 행정쇄신, 민심수습, 치안확보의 방침을 세워 도정을 폈다.
1960년 3·15부정선거로 선거법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8월 선거법위반 및 허위공문서 작성 등으로 7년을 구형받았고, 이듬해 혁명재판 이심판부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되어 복역 중 1963년 3·1절 특사로 가석방되었다.
1964년 광신흥업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1972년에는 제헌동지회의 자격으로 10월 유신 지지에 동참했다. 1982년 12월 18일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자택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