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길은 일제강점기, 황해도 황주군 황주면 성남리 시장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일 황주군 황주면 성남리 시장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 간부인 김성준, 황기타와 함께 만세운동을 준비하였고, 3월 2일 성남리 시장에서 공약 3장에 대한 연설을 한 후, 천도교인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 후 체포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황해도 황주군 황주면 출신으로, 1886년 태어났다. 황주군 천도교구의 주요 간부로 활동하였다. 사망일은 전해지지 않는다.
서울에서 인쇄된 독립선언서는 1919년 2월 28일부터 주로 천도교와 기독교 조직망을 통해 전국 각지로 전달되었는데, 3월 1일에는 해주와 사리원 등 황해도의 주요 지역에도 전해졌다.
황주군의 천도교구에는 3월 1일 오후 평안남도 중화군의 최창룡(崔昌龍)이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였다. 교구장 김성준(金聲俊)은 황기타(黃己拕)와 최석길(崔錫吉) 등의 간부를 불러 운동 방안을 협의하였다. 김성준은 황기타와 최석길 등의 간부에게 황주의 시위를 일임한 뒤, 중화군의 상황을 점검하러 떠났다.
3월 2일 황기타는 황주군 성남리 시장에서 천도교인 300여 명을 이끌고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최석길은 공약 3장(公約三章)에 대해 연설하였다. 시위대는 황주경찰서 앞으로 행진하였고,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면서 경찰서를 파괴하기도 하였다.
오후에는 주일을 맞아 예배를 드리는 야소교당(耶蘇敎堂)으로 가서 함께 시위를 진행하였다. 일제 경찰은 천도교구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사람들을 습격하여 중요 인물 85명을 체포하였다. 천도교구실에서 체포된 최석길은 1919년 7월 12일 고등법원에서 징역을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