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탁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내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일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읍 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천도교와 개신교가 연합하여 고종황제 추도식을 거행한 후, 최승탁은 시위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삼창한 후, 시위 행진을 주도하였다. 시위대에 위협을 느낀 일제 헌병들의 발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1919년 9월 1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평안남도 강서군 출신으로 1885년 태어났고, 1919년 9월 1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3월 3일 강서 읍내에서는 고종황제 추도식이 열릴 예정이었으므로, 그 전날인 2일 오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읍내 시장이 열리는 장날이었던 3일에는 강서 읍내 주민만이 아니라 함종면과 증산면 등 근처의 천도교인과 개신교인이 중심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였다.
오전 10시경 기독교인과 천도교인들은 강서 읍내에서 고종황제 추도식을 거행하였다. 추도식은 곧바로 독립선언식으로 이어졌고, 참석자들은 독립만세를 소리 높이 외쳤다. 강서 읍내 시위는 고종의 추도식이 만세시위로 이어진 흔하지 않은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많은 사람들의 시위로 위협을 느낀 강서 헌병주재소의 헌병들은 곧바로 발포하기 시작하였으며,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평안남도 지역은 3 · 1운동이 발발하자마자 가장 열렬하고 강력한 시위운동을 전개한 지역이었는데, 강서 읍내 시위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최승탁(崔承鐸)은 시위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삼창한 후, 시위 행진을 주도하였다. 체포되고 재판받은 구체적인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복역 중이던 1919년 9월 1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