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최초의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18211846) 안드레아 신부를 비롯하여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비오(17431804), 작은할아버지 김종한 안드레아(17641824), 아버지 김제준 이냐시오(17951839) 등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이다.
증조부 김진후는 하급관리였으며 1791년(정조 15) 신해박해와 1801년(순조 원년) 신유박해를 거치며 해미읍성에서 옥살이를 하던 중에 1814년에 옥사하였다. 작은할아버지 김종한은 1816년 대구감영에서, 아버지 김제준은 1839년(헌종 5) 기해박해 때 순교했으며,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서울의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김대건 신부는 7살 때 고향을 떠나 가족과 함께 경기도 용인의 골배마실에서 생활하다 파리외방선교회 피에르 모방(Pierre P. Maubant, 나백다록[羅伯多祿], 1803~1839)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신학생으로 발탁된 김대건은 서울에서 라틴어 등 신학의 기초를 공부한 후 김대건의 집안 내력을 들은 정하상과 모방 신부의 권유를 받고 마카오신학교에서 유학하였다.
1844년 12월 가톨릭 부제서품을 받고 1845년 10월 조선에 돌아온 김대건은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서 사목활동을 하다 1846년 6월 5일 체포되었다. 세계지리에 밝고 박학다식한 김대건에 우호적인 대신도 있었으나 서양 세력에 의한 중국의 몰락을 목격한 정부의 쇄국정책으로 김대건 신부는 참수형을 선고받고 같은 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김대건 신부는 복자(福者)로 선포되었으며, 1984년 5월 6일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해 성인(聖人)으로 추대되었다. 현재 한국 천주교회의 성직자들의 수호성인으로 모셔지고 있다.
김대건 신부의 출생지인 '충청도 면천 솔뫼’는 현재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다. ‘솔뫼’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松山]’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1946년 세운 순교복자비가 위치하며 2004년 김대건 신부 생가가 복원되었다.
주변에는 김대건 신부 동상과 기념관, 야외 성당 등이 조성되어 있어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와 생애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솔뫼성지는 조선 후기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 발생한 천주교 전래와 박해 그리고 박해를 이겨낸 천주교인의 신앙심과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종교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사상적 변천을 증거하는 유적이라고 평가된다. 2014년 9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