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80~1981년 출토작업을 한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고분군 1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
제작 배경
내용
이 금동관이 출토된 부산 복천동 10 · 11호분은 으뜸덧널[주곽(主槨)]과 딸린덧널[부곽(副槨)]로 구성된 대형분이다. 으뜸덧널인 11호분은 구덩식 돌덧널[수혈식석곽(竪穴式石槨)]이고 딸린덧널인 10호분은 덧널[목곽(木槨)]이다. 금동관은 장식대도, 철검, 철정(鐵鋌), 철촉이 든 화살통 등과 함께 으뜸덧널 안에 묻혀 있었다. 세부적으로는 무덤 주인공의 머리 우측에 놓인 철정 위에서 정면부가 남동쪽을 향하여 정치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신라의 금동관 가운데 잔존 상태가 양호한 편에 속한다.
형태 및 특징
파상문(波狀文)과 점열문(點列文)이 새겨진 관테[臺輪] 중앙과 좌우에 나뭇가지를 도안화한 세움장식[立飾]이 못 2개로 고정되어 있다. 세움장식에는 3단의 곁가지가 있는데 끝이 아래로 쳐져 있다. 줄기의 맨 꼭대기에는 보주형(寶珠形) 장식이 있고 그 속에 삼엽문(三葉文)이 표현되어 있다. 그간 발굴된 신라 금동관 가운데 이 관과 동일한 도안을 갖춘 것은 찾기 어렵다. 다만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동관, 경주 교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금관과는 부분적으로 유사하다.
의의 및 평가
신라의 황금문화가 개시되는 시점의 금동관이다. 도안 및 제작기술로 보아 신라 금동관의 초기 사례에 해당한다. 이 금동관은 신라가 부산 지역을 영역화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실물 자료이다. 2016년 11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김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 『동래 복천동고분군Ⅰ』(부산대학교박물관,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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