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금동관이 출토된 부산 복천동 10 · 11호분은 으뜸덧널[주곽(主槨)]과 딸린덧널[부곽(副槨)]로 구성된 대형분이다. 으뜸덧널인 11호분은 구덩식 돌덧널[수혈식석곽(竪穴式石槨)]이고 딸린덧널인 10호분은 덧널[목곽(木槨)]이다.
금동관은 장식대도, 철검, 철정(鐵鋌), 철촉이 든 화살통 등과 함께 으뜸덧널 안에 묻혀 있었다. 세부적으로는 무덤 주인공의 머리 우측에 놓인 철정 위에서 정면부가 남동쪽을 향하여 정치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신라의 금동관 가운데 잔존 상태가 양호한 편에 속한다.
파상문(波狀文)과 점열문(點列文)이 새겨진 관테[臺輪] 중앙과 좌우에 나뭇가지를 도안화한 세움장식[立飾]이 못 2개로 고정되어 있다. 세움장식에는 3단의 곁가지가 있는데 끝이 아래로 쳐져 있다. 줄기의 맨 꼭대기에는 보주형(寶珠形) 장식이 있고 그 속에 삼엽문(三葉文)이 표현되어 있다. 그간 발굴된 신라 금동관 가운데 이 관과 동일한 도안을 갖춘 것은 찾기 어렵다. 다만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동관, 경주 교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금관과는 부분적으로 유사하다.
신라의 황금문화가 개시되는 시점의 금동관이다. 도안 및 제작기술로 보아 신라 금동관의 초기 사례에 해당한다. 이 금동관은 신라가 부산 지역을 영역화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실물 자료이다. 2016년 11월 16일 보물로 지정되었고, 국립김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