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후기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수원유수로 재직하면서 지방 통치와 관련된 업무를 기록한 공무일기.
개설
서지적 사항
내용
이 이후로 유수부의 업무를 보고하는 장계(狀啓), 그와 관련하여 내려온 전교(傳敎) 등의 문서, 주변의 군현과 도와 주고받은 관문(關門), 사통(私通), 수원유수부 산하의 통치기구들과 향촌에 포고한 감결(甘結)과 각종 전령(傳令)들이 간단한 공무 기록과 함께 날짜별로 등재되어 있다. 이것은 이듬해 1837년(헌종 3) 12월 2일에 중앙의 지경연(知經筵)으로 임명되어 12월 12일에 수원을 떠날 때까지 기록되었다.
『화영일록』에 등재된 공문서 가운데 일상적인 수원의 행정 보고로는 화령전과 건릉, 그리고 현륭원에 관한 것이 많다. 공문서 내용상 일상적인 작황 보고인 농형(農形)과 연분(年分) 등의 장계를 제외하더라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재정 관련 기사들이다. 이 이외에도 환곡 운영과 관련하여 각 도(道)에서 수원유수부로 수납되는 모곡의 감소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다. 수원부의 농업과 재정상황에 대해서 서유구는 흉작이 거듭되어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 환곡)의 삼정(三政)이 모두 문란해지고 민은 궁핍하며 토지는 황폐하다고 하며 그 회복 방법을 제시했다. 그 가운데에 가장 빈번한 지시는 제언이나 보(洑) 등의 수리시설과 농구를 미리 유의하고 농기를 놓치지 않을 것, 지력을 다할 것을 강조하는 ‘권농(勸農)’ 전령이다.
의의와 평가
경기지역 공무 일기가 흔치 않은 사료 현존 상황에서도 『화영일록』은 자료적 가치가 높다. 이러한 지방관의 공무 기록은 지방에서 중앙으로 보고되고 중앙에서 논의되는 정치 안건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현장의 통치 현실을 알려준다. 더구나 조선의 풍토에 적합한 그의 농학은 그 이념적 근거인 경학(經學)을 지방통치에 실천하는 과정에서 도출되었다.
참고문헌
- 『풍석 서유구연구』(조창록·김문식·박권수·김호, 실시학사, 2014)
- 「서유구의 진휼정책:『완영일록』·『화영일록』을 중심으로」(손병규, 『대동문화연구』 42,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3)
- 「해제」(이우성 편,『화영일록』, 아세아문화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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