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632년(인조 10)에 인조가 자신의 생부인 정원군을 원종대왕으로, 생모 계운궁 구씨를 인헌왕후로 추존한 사건.
개설
결국 1628(인조 6)부터 인조와 신하들은 본격적인 추숭(追崇) 논쟁에 들어가게 되었다. 4년간의 격론과 우여곡절 끝에 1632년(인조 10) 5월 인조는 독단으로 추존을 결정하고 정원군을 원종대왕(元宗大王)으로, 계운궁(啓運宮) 구씨(具氏)를 인헌왕후(仁獻王后)로 추존하였다. 처음에는 두 신주를 별묘(別廟)에 안치하였다가 1635년(인조 13) 3월에 종묘(宗廟)에 승부함으로써 추숭 전례가 끝나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
김장생은 왕실의 예법은 사대부와 다른 특수성이 있으므로 손자인 인조가 조부인 선조의 대통을 직접 계승할 수 있고 종묘에 아버지 자리가 없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으며, 생부인 정원군은 백부나 숙부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 박지계는 사대부의 예법이나 왕실의 예법은 그 정신이 다르지 않으므로 손자가 조부의 대통을 직접 계승할 수는 없으며 종묘에 아버지의 자리를 비우는 것은 불가하므로 정원군을 추존하여 대통의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는 반정 직후 정원군 가묘에서 고유할 때의 축문 칭호 문제에서 비롯되어 1626년(인조 4) 1월 계운궁의 상사(喪事) 때 상복 문제 등으로 격화되었으며, 결국 1628(인조 6)에 본격적인 추숭(追崇) 논쟁에 들어가게 되었다.
경과
결과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인조실록(仁祖實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사계전서(沙溪全書)』
- 『잠야집(潛冶集)』
- 『조선후기 당쟁의 종합적 검토』(이성무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 「인조대 원종 추숭 논쟁과 왕권론」(김용흠, 『학림』27,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2006)
- 「인조대 원종추숭론의 추이와 성격」(이현진, 『북악사론』7, 북악사학회, 2000)
- 「인조대 전례논쟁(1623∼1635)에 대한 종교학적 재평가」(박종천, 『종교학연구』17, 서울대학교 종교학연구회, 1998)
- 「17세기의 예론과 당쟁」(이성무, 『조선후기 당쟁의 종합적 검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 「사계 예학과 국가전례」(이영춘, 『사계사상연구』, 사계·신독재기념사업회, 1991)
- 「잠야 박지계의 예학과 원종추숭론」(이영춘, 『청계사학』7,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청계사학회, 1990)
- 「인조초 복제논의에 대한 소고: 계운궁구씨의 상장을 중심으로」(서인한, 국민대학교 석사논문,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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