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니시비 ()

조선시대사
개념
조선후기 제19대 숙종 때 송시열과 윤증의 대립으로 발생된 서인 간의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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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제19대 숙종 때 송시열과 윤증의 대립으로 발생된 서인 간의 분쟁.
개설

회니시비(懷尼是非)는 숙종 때 사제 관계에 있었던 송시열(宋時烈)과 윤증(尹拯)의 불화 때문에 그들의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분쟁으로,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갈라지게 한 사건이다.

숙종조에 충청도 회덕(懷德)에 살았던 저명한 우암(尤庵) 송시열과 그의 제자로서 이산(尼山)에 살았던 명재(明齋) 윤증은 여러 가지 일로 불화를 빚었다. 그들의 사사로운 불화는 1684년(숙종 10) 4월에 송시열의 제자 최신(崔愼)이 조정에 윤증을 고발하고 처벌을 요구함으로써 국가 차원의 정치적 분쟁이 되었다. 두 사람의 제자들은 각기 스승을 변호하고 상대방을 비판하는 논쟁을 벌임으로써 조정이 시끄러워지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게 한 요인이 되었다.

연원 및 변천

윤증의 아버지 윤선거(尹宣擧)와 송시열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친구였다. 역시 친구 사이였던 송시열과 윤휴(尹鑴)가 현종 대에 예송(禮訟)으로 불화를 빚자 윤선거는 그들을 화해시키려 하다가 송시열의 불만을 샀다. 송시열은 윤선거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죽지 않은 일을 비난하였고, 윤선거의 묘문(墓文)을 무성의하게 지음으로써 제자 윤증과 갈등을 빚었다.

윤증은 1681년(숙종 7) 송시열에게 비난하는 편지를 보내려다 그만두었는데, 여기에는 송시열이 ‘의리와 이익을 같이 행하고[의리쌍행(義利雙行)], 왕도와 패도를 병용하였다[왕패병용(王覇幷用)]’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신유의서(辛酉擬書)’라고 하였다. 이 ‘신유의서’가 송시열의 사위이며 윤증의 사촌이었던 윤박(尹搏)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내용

1684년(숙종 10) 4월 ‘신유의서’의 내용을 가지고 최신이 윤증을 스승을 배반한 죄로 고발하고 처벌을 요구하자 대대적인 정치적 분쟁이 야기되었다. 윤증의 제자였던 나양좌(羅良佐)와 친구 박세채(朴世采) 등은 그를 옹호하였고, 송시열의 제자들과 조정의 대신들은 윤증을 비판하였다. 이리하여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윤증 자신은 춘추관에 편지를 보내어 율곡(栗谷)은 입산한 과오가 있지만, 자신의 부친은 아무 과오가 없다고 주장하였다가 선현을 모욕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가례원류(家禮源流)』는 윤선거와 유계(兪棨)가 함께 저술한 책인데, 1711년(숙종 37)에 유계의 집안에서 단독으로 간행하였고, 또 송시열의 제자 정호(鄭澔)가 발문을 쓰면서 윤증을 비난한 것 때문에 큰 물의가 빚어졌다.

결국 1716년(숙종 42) 7월에 숙종이 처분을 내려 송시열은 잘못한 것이 없고 윤증은 잘못한 것으로 판정하여 윤증을 유현(儒賢)으로 대접하지 말 것을 지시하였다. 이를 ‘병신처분(丙申處分)’이라고 하였는데, 이로써 회니시비는 공식적으로 종결되었다.

의의와 평가

1684년(숙종 10)부터 30여 년간 논란되었던 ‘회니시비’는 사제 간의 사사로운 분쟁이 정치적 분쟁으로 비화한 사건이었다. 오래 지속되었던 이 분쟁은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당의통략(黨議通略)』
『조선정치사』(이희환, 혜안, 2015)
『조선후기 왕위계승 연구』(이영춘, 집문당, 1998)
『조선후기당쟁연구』(이희환, 국학자료원, 1995)
「숙종초기의 정치구조와 「환국」」(홍순민,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6)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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