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아현교회는 1888년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서대문지방 소속 교회이다. 1885년 내한한 스크랜턴 선교사가 가난한 환자를 돌보며 의료활동을 시작했고, 1888년 애오개 시약소를 열었다. 시약소는 10개월 만에 문을 닫았지만, 스크랜턴 대부인(스크랜턴의 어머니)이 여성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이어갔다. 1893년 노블 선교사 부부가 담당하면서 안정적 성장을 이루었다. 1925년 미국의 선교헌금으로 60평 규모의 벽돌 예배당을 지었다. 1954년 교단 분열을 겪었다. 1970년대 이후 국내교회 개척과 해외선교에 앞장서는 등 성장을 이루었다.
정의
1888년 설립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서대문지방 소속 교회.
내용
애오개 시약소는 인력 부족으로 문을 연지 10개월 만에 문을 닫았지만, 스크랜턴의 어머니이자 이화학당을 설립하고 여성교육에 앞장선 스크랜턴 대부인(M. F. Scranton)이 애오개에서 부인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이어갔다. 1891년부터 올링거(F. Ohlinger) 선교사가 애오개 선교를 맡아 시약소 건물에서 집회를 시작하였고, 1893년 9월부터 노블(W. A. Noble) 선교사 부부가 올링거의 뒤를 이어 애오개 선교를 담당했다. 노블 부부가 애오개 선교를 맡으면서 교회의 안정적 성장이 이루어져 교인이 많을 때는 100여 명이었다. 노블 부인은 문맹의 여성과 아이들에게 기독교 교리와 한글을 가르쳤다. 노블 부부의 애오개 선교는 활기를 띠었으나 청일전쟁으로 교인이 흩어지고 인근 천주교인과의 분쟁이 일어나면서 위축되었다. 거기에 노블 부인이 건강 문제로 일시 귀국하게 되자 애오개 집회는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여성 교인들의 요청으로 1897년 애오개에 매일학교가 개설되면서 복음 선교도 되살아났고, 매일학교는 아현여학교를 거쳐 아현여자보통학교로 발전하였다.
아현교회는 1909년 마포·공덕·창천·서강교회 등과 함께 ‘서문 밖’ 구역에 소속하게 되었다. 현순 목사가 서문 밖 구역의 담임자로 파송된 이후 30년 동안 아현교회는 이들 서대문밖의 교회들과 ‘합구역’ 형태로 목회자 파송을 받았다. 현순에 이어 오태주, 윤성렬, 최상현, 한석원, 최학규 목사가 아현교회에서 목회하였다.
1925년에는 미국에서 보내온 선교헌금으로 이전의 ‘ㄱ’자 한옥 예배당을 허물고, 60평 규모의 벽돌예배당을 지었다. 1930년대 서울시의 도로계획에 따라 예배당을 다시 옮겨지었다. 1938년 아현교회는 재정자립을 이룩하고 처음으로 독립구역(아현구역)이 되어 교회 단독으로 목회자를 맞이하는 기쁨을 누렸지만, 일제 말기 한국의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총독부의 시책에 따라 애국반 조직, 애국헌금 납부 등의 고통을 겪었다.
해방 후 1954년 총회에서 교단이 분열되어 한국감리교회는 혼란과 갈등을 겪게 되었는데 이 와중에 아현교회도 분열되었다. 1956년 김성렬 목사가 별도로 아현중앙교회를 세워 분립해 나갔고, 남은 교인들은 한영선 목사를 중심으로 전도운동에 나서 아현여학교 부지를 여선교부로부터 이양 받아 새로운 예배당을 마련하는 등 교회 부흥에 나섰다. 1965년 김지길 목사가 부임한 후 아현교회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김지길 목사는 1949년 감독으로 선출된 김유순 목사에 이어 1979년 두 번째로 아현교회가 배출한 감독이 되었고, 신경하 목사는 아현교회 출신 세 번째 감독이었다. 1970년대 이후 아현교회는 성장을 이루며 사회선교활동을 포함한 다양한 선교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국내교회 개척과 해외선교에도 앞장섰다.
참고문헌
-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사』I(이덕주,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2007)
- 『선한 사마리아인의 애오개 사랑, 아현교회 110년사』(이덕주, 기독교대한감리회 아현교회,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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