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적이고 초교파적이며 사진이 들어있는 월간 선교잡지’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이 잡지는 주로 한국학 관련 글을 게재하였다. 감리교 선교사 크램(W. G. Cram), 베크(S. A. Beck), 노블(W. A. Noble)과 장로교 선교사 게일(J. S. Gale)의 참여로 간행되었으며, 서울 YMCA인쇄소에서 인쇄되었다.
크램은 창간사를 통해 “모든 선교사들은 그들이 일하고 있는 현장의 사람들을 잘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의 사고방식, 생활, 습관과 풍속, 문학과 종교 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한 선교사가 터득한 지식은 곧 모든 선교사들의 유익을 위하여 전수되어야 한다. 한국의 선교사들이 자신의 사역을 보다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조선 정부 당국도 환영할 일일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의 생활과 선교현장, 그리고 선교현장의 상황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본국의 사람들에게도 특별히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라고 언명하였다.
창간호에서 “한국인들의 마음가짐(attitude of mind)을 보여주는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 일화 그리고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실을 것”이라고 편집 방향을 밝혔듯이 이 잡지에는 한글, 한국의 자연·역사·인물·옛날이야기·예술품·건축물·의복·놀이·종교·세시풍습 등에 관한 다양하고 폭넓은 글들이 실려 있다.
특히 노블 선교사는 ‘Earl Ray’라는 필명으로 선교 경험을 소설화하여 창간호부터 1918년 6월호까지 “Blazing The Trai(새로운 길의 개척)”이란 제목으로 연재하였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최근 침투하고 있는 서구 열강들의 영향을 받아 한국 생활의 많은 특성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그 특성들을 줄거리 속에 구체화시킴으로써 일부라도 보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밝히고 있다. 노블은 한국 전통 사회 속으로 들어온 기독교복음의 영향력을 선교 현장을 중심으로 묘사하는 한편 “한국은 정치적인 야망이 아니라 도덕적인 야망을 품고 있는 나라이며, 한국인들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기독교 진리를 향한 단순한 신앙 그리고 깊은 사고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려고 했다.
선교사들은 선교현장을 연구하고 터득한 지식을 후배 선교사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초기부터 한국의 언어와 역사, 문화 등을 다룬 잡지로The Korean Repository와 The Korea Review를 간행한 바 있는데 이것은 모두 일제의 한국 강점 이전에 폐간되었다. The Korea Magazine은 3·1운동 직후 1919년 4월 제3권 4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The Korea Magazine은 일제의 한국 강점 이후 일제의 탄압 속에 한국의 정신문화가 사라져가는 가운데 서양인들이 한국학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