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45년, 설립된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교회.
개설
설립 목적
연원 및 변천
1947년에는 경기노회의 요청에 따라 ‘경동교회’로 개칭했으며, 교회 신인회(新人會)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국기독학생연합회(KSCF)가 결성되었다. 경동교회는 당회와 제직회 대신 각종 위원회가 치리권(治理權)을 행사했으나 1948년 당회와 제직회를 조직하고 노회에 가입하였다. 1950년 6·25전쟁 기간에는 피난지인 부산 광복동 신생회(新生會) 사무실에서 예배를 계속했고 청년들은 구호 및 봉사 활동을 전개하였다.
1953년 4월 장로회 제38차 총회에서 김재준 목사가 파면되고 조선신학교 교장에서도 면직되자 동년 6월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분립되었다. 1958년 예배당이 완공되었으며 김재준 목사가 은퇴하고 강원용이 담임 목사로 취임하였다. 강원용은 1959년에 기독교사회문제연구회를 결성했고, 1960년 4·19의거 때는 이 교회의 학생 · 청년들이 많이 참여했으며, 1995년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남북인간띠잇기대회’에도 많은 교인들이 참여하였다.
1974년에는 추석에 맞추어 강강수월래 합창과 탈춤이 포함된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고, 1995년 전통식 디자인의 예배복을 입고 첫 예배를 드렸으며, 1996년 기존 찬송가와 전통 찬송가를 묶은 ‘경동찬송가’를 출판하는 등 한국교회의 토착화운동을 선도하였다.
1970년대 이후에는 김재준과 강원용을 비롯한 많은 청년 · 학생들이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았으나, 1976년에는 청계천 노동자를 위한 야학을 설립했으며, 1990년에는 경동도서실을 개관하고, 1993년에는 어린이집을 개원하는 등 지역 사회를 위해서도 봉사하였다.
2000년에는 외국인의료봉사자 모임을 처음으로 발족시키며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의료 선교의 문을 열었다. 또한 한독 에큐메니칼 첫 연합 예배, 대한성공회 주교좌 성당과 첫 교환 예배를 드리는 등 에큐메니컬운동에 적극나섰다. 2010년에는 한신대 신학대학원과 공동으로 '제1회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6월에는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평화기도음악회, 갈라 콘서트를 열며 기독교 평화 운동에 이바지했다. 2016년에는 '경동교회 명강좌:종교와 과학'을 열며 종교와 과학의 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였다.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민경배, 『경동교회 30년사』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 1975)
- 주재용, 『경동교회 40년사』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 1985)
- 한국기독교장로회 역사편찬위원회 편, 『한국기독교 100년사』 (한국기독교장로회출판사, 1992)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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