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 ()

천주교
인물
덕원면속구 소속으로 해방 이후 평양대목구로 파견되어 안주본당, 비현본당에서 사목한 신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3년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김해(金海)
출생지
부산시 중구 영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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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덕원면속구 소속으로 해방 이후 평양대목구로 파견되어 안주본당, 비현본당에서 사목한 신부.
개설

세례명은 마르코이고 본관은 김해다. 덕원면속구 소속 신부로 평양대목구에 파견되어 본당의 주임신부로 활동하던 중 6·25전쟁 발발 직후 북한 공산당에 체포되어 행방불명되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13년 1월 3일 부산시 중구 영주동에서 김성준(金性俊)과 박부경(朴富瓊)의 4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산교구의 김동언(金東彦, 1908∼1981) 신부가 형이다. 가족이 영주동에서 경상남도 울산군 언양면 송대리(현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로 이사하면서 언양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가족이 또 다시 일본으로 이주하자 일본에서 중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전기공과(電氣工科)에 입학하였다.

와세다대학 시절 동경대교구장 샴봉 대주교의 비서 겸 주교관 수위로 근무했다. 당시 주교관에 머물며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던 베네딕도회 소속 파비안 담(Fabianus Damm, 1900∼1964) 신부의 영향으로 와세다대학을 중퇴하고 덕원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1942년 3월 6일 덕원 대수도원 성당에서 보니파시오 사우어(Bonifatius Sauer, 1877∼1950)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다. 서품 직후 덕원신학교 교수 신부로 발령을 받아 재직하였다. 1944년 12월에 다른 신부 한 명과 함께 평양대목구에 파견되어 안주(安州) 본당 주임 신부로 발령을 받았다. 1945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원을 본당에 개설하였고, 해방 후에는 우리말 공부 교실을 열어 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본당을 운영할 당시에는 10명의 자치위원회를 조직하여 신자들이 자치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도록 하였다.

1946년 10월 평안북도 비현본당으로 전임되었다. 당시 비현본당에는 재력이 있는 사람들의 후원으로 아동들을 무료로 교육시키는 성심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 정권 면인민위원회의 성심학교 교사(校舍)를 빌려달라는 요구를 거절하자 면과 군의 보안서에 여러 차례 호출되어 압력을 받았다. 그 사이 학교 운영은 심각한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는 후원자들 대부분이 공산당에 의해 숙청되거나 이를 피해 월남하였기 때문이었다. 교사 2명의 감원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사람이 그를 고발해 체포되어 감금되었다. 이 소식이 교구에 알려지게 되자 평양대목구 부감목이던 김필현 신부가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소련군 사령부에 진정서를 제출하여 석방되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지속적인 탄압으로 인해 학교 운영이 어려워지자 대목구장인 홍용호 주교의 허락을 받고 학교를 폐쇄하였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결국 학교 건물도 강제로 몰수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1948년 8월 27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비현 분원을 다시 시작하는 등 사목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1950년 6월 27일 평양대목구 신부로는 마지막으로 연행되어 간 뒤 행방불명되었다.

참고문헌

『북녘 땅의 순교자들』(평양교구 순교자 사료 수집위원회, 가톨릭출판사, 1999)
『천주교 평양교구사』(천주교평양교구사 편찬위원회, 분도출판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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