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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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서울교구장 비서, 서울대교구 부주교(현 총대리) 등에 서임된 사제. 신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8년
사망 연도
1990년
본관
금령(金寧)
출생지
충청남도 당진군 신평면 한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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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이후 서울교구장 비서, 서울대교구 부주교(현 총대리) 등에 서임된 사제. 신부.
생애 및 활동사항

1918년 5월 3일 충청남도 당진군 신평면 한정리에서 김창배(金昌培)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례명은 바르나바이다. 부친은 한때 독립운동가인 김구의 재정을 담당했다. 신평공립보통학교와 동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용산의 예수성심신학교로 진학하였지만, 일제가 예수성심신학교를 폐쇄하여 성 베네딕도회가 운영하던 덕원신학교 철학과로 전학했다. 1943년 12월 5일 덕원신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사제로 서품되어 인천 답동 본당 보좌신부로 잠시 있다가 해주본당 주임신부로 전근되었다. 해주본당 주임으로 있을 때 일본헌병대는 관동군의 일부가 황해도 서해안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성당을 징발하려고 했으나, 이를 저지하고 해방이 될 때까지 성당을 지켰다.

해방이 되자 김일성(金日成)은 남한 출신의 김두봉(金枓奉)을 시켜 그를 포섭할 것을 지시하였다. 당시 김두봉은 로동신문 기자로 활동하던 자신의 딸을 이용해 협력할 것을 요청하였지만 실패했다.이후 1946년 여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는 ‘조선기독교도연맹’을 결성하면서 그에게 중앙위원 위촉장을 발송하여 회의에 참석할 것을 요청하였고, 로동당 황해도당도 그를 입당시키려고 회유하였다. 이에 더 이상 북한에서 사목생활을 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1946년 8월 월남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후에도 설득 작업은 계속되어 처음에는 이를 거부하였지만, 일단 거짓으로 협력할 것을 약속하여 석방되었고, 1946년 9월 용당포에서 밤에 배를 타고 남한으로 탈출하였다.

남한에 정착한 후 서울교구장인 노기남 주교에 의해 교구장 비서로 임명되었고, 노주교에게 정치 · 사회 현상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등 교회 안팎의 문제에 대처했다. 또한 가톨릭 정치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승만에게 장면(張勉)을 추천하여 정치인으로 입문시켰고, 이승만 대통령이 독재 정치를 행하자 장면을 후원하여 1956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도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한편 김철규가 1953년 10월부터 1962년 5월까지 약현 본당(현 중림동 약현 본당) 주임신부로 있을 때 4·19와 5·16 등 많은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때 정치인들, 특히 김대중(金大中)과도 인연을 맺었다. 김대중은 장면을 대부로 하여 1957년 7월 3일 김철규로부터 세례를 받고 천주교인이 되었다. 유신 헌법 선포 후 박정희는 그에게 국무총리를 맡아주도록 부탁하였지만 이를 거절하였다고 한다.

교구장 비서에 뒤이어 영등포 본당(1951. 9.), 중림동 약현 본당(1954. 10.), 가회동 본당(1963. 7.), 공항동 본당(1967. 1.)의 주임신부를 거쳐 1970년 11월 13일 서울대교구 부주교(현 총대리)에 임명되었다. 이어 정릉동 본당(1973. 10.)을 거쳐 왕십리 본당(1976. 6.)을 마지막으로 1982년 4월 25일 은퇴하였고, 1990년에 별세하였다.

참고문헌

「해방전후의 한국천주교회」(김철규, 『교회와 역사』81, 1984)
「빛과 소금의 길 50, 김철규 신부」(『평화신문』199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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