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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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단체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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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
연원 및 변천

1900년 9월 22일 설립된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성당으로 초대 주임신부는 김양홍 신부이고 주보는 성모 성심이다. 1876년 경 진안 일대에는 충청도에서 일어난 박해를 피해 온 천주교 신자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다. 종교의 자유가 어느 정도 허용될 즈음인 1888년 어은동 공소가 설립되었고, 뒤이어 1889년 설립된 전주 본당의 관할 아래 있게 되었다. 부근의 신자들이 어은동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새로운 신자들도 생겨나면서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증가하였다.

1900년 9월 22일 전주 본당에서 분리하여 진안군 마령면 어은동에 새로 본당을 설립하였다. 당시 어은동 본당이 관할할 공소는 11개 지역이었는데, 김양홍 신부는 다시 18개 지역으로 재편하였고, 당시 신자 수가 999명이었다. 1903년 신자수가 1,400명에 이르자 15칸의 새 성당을 신축하였으며, 다시 1909년 3월 49평의 새 성당을 준공하였다. 1909년 2월에는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어린이 등을 위해 성당에 영신학교(永信學校)를 설립하여 학생들을 교육시켰다.

2대 주임 신부인 이상화 신부는 1922년 6월 성당을 마령면 연장리 한들로 이전하고 한들 본당으로 하였다. 3대 주임 권영조 신부는 1933년 4월 교사(校舍)를 신축하고 해성학교(海星學校)를 설립하여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5개 주임 이기수 신부 시절 보통학교로 개편하였다. 1952년 4월 29일 한들 본당이 진안읍 군하리로 다시 이전되면서 진안본당으로 개칭되었다. 1956년 10월 새 성당을 준공하고 1957년 7월 준공식을 하였다. 1957년 3월 10일 소화유치원을 개원하였지만 운영난으로 1962년 3월 진안경찰서에 인계하였으며, 1959년 3월 20일 성모의원을 개원하였다.

1976년 4월 15일 소화유치원을 다시 개원하였으며, 1977년 12월 8일 그간 본당의 관할 아래 있던 한들 공소가 본당이 되어 분리해 나갔다. 그러나 1985년 1월 25일 한들 본당은 다시 폐쇄되고 진안 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 1979년 12월 진안 천주교회 농민회 협의회가 발족되고 평촌, 소토실, 어은동에 농민회 분회가 생겨났다. 1987년 7월 12일 수녀원과 교육관 건물이 완공되고 1988년 2월 23일 한국 순교복자수녀회 분원이 설립되었다.

1999년 12월 전기 누전으로 성당이 전소되는 바람에 새 성당 건립에 착수하여 2002년 4월 연면적 600평 지하 1층, 지상 1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성당을 완공하였다. 2008년 2월 29일 소화유치원을 폐쇄하고 3월 5일 둠벙노인대학을 개교하였다. 2009년 1월 5일 한국 순교복자수녀회가 철수하고 대신 인보성체수녀회 분원이 설립되었다. 2020년 현재 15개 공소에 1,800여 명의 신자가 있다.

참고문헌

『진안성당 105년사』(천주교 전주교구 진안성당, 2006)
『한국가톨릭대사전』 10(한국교회사연구소, 2004)
『한국가톨릭대사전』(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천주교 전주교구(www.jcatholic.or.kr)
진안본당 카페(cafe.daum.net/jinan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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