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묵란화(墨蘭畵) 16점과 글씨 6점을 수록한 서화첩이다. 상권과 하권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권에는 10점의 묵란화와 4점의 제발(題跋) 글씨가 있고, 하권에는 6점의 묵란화와 2점의 제발 글씨를 수록하였다.
서화첩의 이름을 ‘난맹첩(蘭盟帖)'이라 한 것은 상권 표장(表裝)에 "난맹 소장로각제(蘭盟 小長蘆閣題)"라는 글씨와 하권 표장에 "난맹 이학(蘭盟 二隺)"이라고 쓴 글씨에서 연유한다. 난맹은 어떠한 방식으로 그려야 한다는 다짐, 또는 난의 군자적 자태와 품성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다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상권 제12폭에 난초를 그린 뒤 "명훈(茗薰)에게 그려 준다"는 글을 남겨 같은 자(字)를 썼던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粧䌙師) 유명훈(劉命勳)을 위해 그려 준 서화첩임을 알 수 있다. 상권 첫 폭의 제발에 김정희의 말년 제자였던 유재소(劉在韶)의 인장이 찍혀 있다. 유재소는 유명훈의 아들로, 유재소가 언젠가 『난맹첩』을 소장하여 지금의 형태로 장황하여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상권 제1폭에는 청대 문인화가 도갱(陶賡)을 소개하고 당시 유행하던 감필(減筆)의 묵란화법을 비판한 도갱의 글을 실었다. 제2폭에는 김정희와 교유한 청대 서화가 오숭량(吳嵩梁)의 처첩과 딸들이 사란(寫蘭)에 능했다는 사실을 열거하였다. 제3폭부터 12폭까지는 「적설만산(積雪滿山)」을 비롯한 묵란화 10폭이 그려져 있다. 제13, 14폭에는 서비옥(徐比玉), 황경원(黃耕畹), 조소여(趙小如), 허소아(許小娥) 등 난초 그림에 능했던 청대 여류화가들의 간단한 이력을 열거하였다.
하권 제1폭에는 양주팔괴의 한 사람인 판교(板橋) 정섭(鄭燮)의 시를 써놓았다. 제2폭부터 7폭까지는 「작래천녀(昨來天女)」를 비롯한 묵란화 6폭이 그려져 있다. 제8, 9폭에는 김정희 난법(蘭法)의 연원과 비결을 적어놓은 이른바 ‘사란비체(寫蘭秘諦)’라는 글을 써놓았다. 이에 따르면 김정희가 자기만의 난법을 이루기 위해 송 · 원대 묵란화가인 정사초(鄭思肖) · 조맹견(趙孟堅)으로부터 명대의 문징명(文徵明), 진원소(陳元素)와 명말청초의 석도(石濤), 서위(徐渭)를 거쳐 청대의 정섭(鄭燮), 전재(錢載)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대 명가들의 난법을 연구해 왔음을 밝혔다.
마지막에는 "잎은 가지런히 뻗는 것을 피하고 세 번 굴려야 신묘해진다."는 조맹부(趙孟頫)의 글을 인용하며 ‘삼전(三轉)의 묘(妙)’를 강조하는 것으로 『난맹첩』의 대미를 장식하였다.
상권과 하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의 크기는 세로 22.8㎝, 가로 27.0㎝이며, 하권은 세로 23.4㎝, 가로 27.6㎝이다. 나무 재질의 표장이다. 상권 제1폭의 유재소 관련 인장 "유재소인(劉在韶印)"과 “소천심정(小泉審定)” 인장을 제외하고 김정희 관련 인장 "보담재(寶覃齋)"와 “추사시화(秋史詩畵)” 등 32방의 인장이 찍혀 있다.
김정희 필 『난맹첩』을 통해 정섭을 비롯한 청대 양주화파와의 영향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아울러 김정희의 묵란화와 제발을 함께 모은 서화첩이라는 점, 그리고 김정희 난법의 연원과 요체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자료이다. 2018년 6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