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윤정현(尹定鉉, 1793~1874)의 호 ‘침계(梣溪)’를 횡액(橫額)으로 써서 준 글씨이다. ‘침(梣)’ 자는 해서(楷書)로 쓰고 ‘계(溪)’ 자는 예서(隸書)로 썼다. 대자로 쓴 ‘침계’ 글씨 뒤로는 여덟 줄에 걸친 관지(款識)를 써놓아 이 글씨를 쓰게 된 내력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 두 글자를 써 달라는 부탁을 전해 받고 예서로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한비(漢碑)에 첫 번째 글자가 없어 함부로 쓰지 못하고 마음에 두고 잊지 않은 지 이제 30년이 되었다. 근래 북조(北朝)의 금석(金石)을 제법 많이 보았는데, 모두 해서와 예서를 혼합하여 썼다. 수당(隋唐) 이후의 진사왕비(陳思王碑)와 맹법사비(孟法師碑) 등의 여러 비는 그 중에서도 더욱 심한 것이다. 이에 그 뜻을 모방하여 쓴다. 이제야 부탁을 들어주며 오랜 숙원을 속 시원하게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완당이 아울러 쓴다.”
관지 내용을 통해서 윤정현이 부탁한 지 30년이 지나서야 이 글씨를 써서 주었고, 해서와 예서를 혼합하여 쓴 글씨임을 알 수 있다. 김정희가 1851년(철종 2)에 함경도 북청(北靑)에 유배되었을 때 윤정현이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이듬해 김정희가 방면되자 같은 해 관찰사직에서 물러난 일이 있다.
또한 북청 유배 시절에 김정희는 윤정현과 함께 황초령신라진흥왕순수비(黃草嶺新羅眞興王巡狩碑) 잔편(殘片)을 수습하고 비각을 세워 보호한 일도 있다. 이러한 특별한 인연으로 인해 김정희가 삼십 년이 지나서야 윤정현의 오래된 숙원을 들어주며 이 글씨를 써서 주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해서와 예서를 혼합하여 가로로 길게 쓴 액서(額書)이다. 크기는 세로 42.7㎝, 가로 123.5㎝이다. 이 작품은 나무 상자에 담겨 보존되고 있다. 덮개 표면에는 1934년에 쓴 이한복(李漢福)의 배관기(拜觀記)가 있다.
해서와 예서의 필법을 혼합하여 쓴 ‘침계’ 글씨는 윤정현과의 특별한 인연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로, 금석학에 정통했던 학자로서 김정희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작품이다. 2018년 4월 20일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