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덕홍전 자리에는 원래 경소전(景昭殿)이 위치하였다. 1896년(건양 1)에 고종황제는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기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을 하였다. 이 때 경운궁(慶運宮)을 새롭게 정비하면서 경복궁 태원전(泰元殿)에 모신 명성황후의 시신을 모실 빈전(殯殿)과 신주를 봉안할 혼전으로 사용하고자 건립하였다. 곧 9월 4일에 명성황후의 시신을 경소전으로 옮겼고, 1897년 11월 21일에 명성황후의 국장을 지낸 뒤에는 경효전(景孝殿)이라고 부르면서 혼전으로 삼았다.
1904년(광무 8)에 경운궁에 큰 불이 일어나 불에 타고 말았는데, 명성황후의 신주는 준명전(濬明殿)의 서쪽 행각에 임시로 모셨고,그 뒤에는 중명전(重眀殿)의 주변에 자리한 수풍당(綏豐堂)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이후에 경소전 터에 이전과 같은 규모의 건물을 다시 건립하였지만, 1905년에 을사늑약의 체결로 인해 고종황제가 여전히 중명전에 머물렀기에 신주를 다시 옮기지는 못하였다. 고종황제가 함녕전으로 돌아온 뒤에도 신주는 여전히 수봉당에 봉안되었다. 1912년에 고종황제의 알현실로 고쳐 짓고서 덕홍전이라고 불렀다.
『매일신보』 1912년 9월 10일자에는 덕홍전은 고종황제의 알현실이었던 창덕궁 인정전을 따라 지었는데, 이미 낙성하여 6일 밤부터 불을 밝혔다고 하면서, 공사비는 6만 여 원이 들었으며, 실내 장식이나 다른 것도 매우 화려한데 큰 벽화는 화백 천초신래자(天草神來子)가 그린 걸작이라고 설명하였다.
이 공사를 진행하면서 이안청(移安廳), 중배설청(中排設廳), 어재실(御齋室) 등 혼전과 관련된 제례 시설은 모두 철거되었고, 대신에 고종황제를 보필하는 이왕직 청사(李王職廳舍)를 비롯하여 찬시실(贊侍室), 귀빈실 등을 만들었다.
한편 고종황제가 쉽게 덕홍전을 드나들도록 함녕전까지 복도를 놓았다고 한다. 현재 주변의 다른 건물은 모두 없어졌지만 복도의 흔적만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