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문(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는 전부 224편 250여 수가 실려 있는데, 스님들과의 수답(酬答)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내용면에서는 불교 교리와 관련된 것이 많다. 문은 15편이다.
본서의 권말에는 1892년(고종 29)에 작성된 용선이제(龍船利濟)의 후발(後跋)이 실려 있고, 권수에는 1901년(광무 5)에 구하천보(九河天輔)가 쓴 서문이 실려 있다. 따라서 아마도 1892년경에 이미 혜견의 작품을 수집하고 있었고, 이것을 1901과 1902년 사이에 편집하여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1권 1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이다. 1902년에 발행하였지만 필사자와 필사장소는 알 수 없다. 『한국불교전서』 제11책에 수록되어 있다.
용악혜견은 조선 후기의 승려로서, 자가 말저바라밀(末底波羅蜜)이며 당명은 송경당(頌經堂)이다. 속성은 김씨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석왕사(釋王寺)에서 오랫동안 경전을 연구하며 후배들을 지도하다가 1897년(광무 1)에 양산 통도사로 가서 머물렀다. 1899년(광무 3)에 해인사로 가서 고려대장경 4부를 간행하여, 통도사·해인사·송광사에 각 1부씩 두고 나머지 1부는 전국의 명찰에 나누어 소장하게 하였다. 1908년 2월 15일 통도사에서 79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용악당사고집(龍岳堂私藁集)』은 혜견의 생존 중에 간행되었다. 시는 체제로 분류됨이 없이 혼합되어 있으므로, 저자가 보관한 것을 그대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승려들과의 수답을 포함하여 자신의 심회를 읊는 시에서도 수선(修禪)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음오절주필(唫五絕走筆)」이라는 시에서는 “부처와 조사도 나지 않는 곳/ 성(性)과 상(相)이 항상 존재할 때/ 배회하다가 슬며시 미소 짓고 서니/ 지금 조금의 지혜는 있도다[佛祖無生處 性相常存時 徘徊微笑立 以今有幾知]”라고 읊고 있다. 여기서 ‘부처와 조사도 나지 않는 곳’이나 ‘성과 상이 항상 존재할 때’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 즉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가리킨다. ‘배회하다가 슬며시 미소 짓고 서니’라는 것은 세속의 생활을 영위하다가도 자신의 본래면목을 알아차리고 은근히 미소 짓는 모습으로서, 혜견은 언제나 불교의 가르침을 떠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문은 총 15편인데, 「갑술납월일체임작자경문이병발(甲戌臘月日遞任作自警文移瓶鉢)」, 「자경념(自警拈)」, 「조계산송광사견삼일상인유록축증유산록(曺溪山松廣寺見三一上人遊錄軸贈遊山錄)」, 「학계서(學契序)」, 「복전의권선문(福田衣勸善文)」, 「황화각상량문(皇華閣上樑文)」, 「해인사대장경인출낙성소(海印寺大藏經印出落成䟽)」, 「내도통도사연기(來到通度寺緣起)」, 「해인사정진연기(海印寺精進緣起)」, 「삼길상사연기(三吉祥事緣起)」, 「무술오월일자상처분사송기(戊戌五月日自上處分賜送記)」, 「대장경각읍지경체파신지봉안기록(大藏經各邑地境遞罷信地奉安起錄)」, 「인염송자경(因拈頌自警)」, 「자경(自警)」, 「인경자경(印經自警)」이다. 문에는 사찰과 연관된 글이 많으며, 「무술오월일자상처분사송기」에는 당시 나라에서 하사한 희사금 등의 목록이 들어 있어 사료적 가치도 가지고 있다.
근대기의 조계종 승려의 시문집으로서, 세속사에 연연하지 않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모습이 보인다. 특히 당시의 사찰 상황이나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실려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