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지눌이 저술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는 중국 당대의 규봉종밀(圭峰宗密, 780∼841)이 지은 『법집별행록(法集別行錄)』에서 요점을 간추리고 그것을 다시 주석한 것으로, 줄여서 『절요(節要)』라고 한다. 『절요』는 17세기 이후 조계종 강원의 교재로서 널리 읽혀졌다. 이에 대한 주석서도 많이 간행되었는데, 조선 후기 조계종의 승려였던 설암추붕이 주석한 『법집별행록절요사기(法集別行錄節要私記)』는 그중의 하나이다. 1권으로 현재 전하지 않는다.
중국 당대의 승려인 규봉종밀은 『법집별행록』을 저술하여, 당시의 선종 종파인 우두종(牛頭宗)·북종(北宗)·남종(南宗)·홍주종(洪州宗)을 비판하고 하택종(荷澤宗)의 우월을 주장하였다. 『법집별행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는데, 『중화전심지선문사자승습도(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를 가리킨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종밀은 『법집별행록』에서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선교일치(禪敎一致)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고려시대의 보조지눌은 그 요점을 추린 뒤 다시 주석을 붙여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1권을 간행하였다.
우리나라 불교는 종래 종밀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종밀의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는 조계종 강원 사집과(四集科)의 교재로서 빈번하게 간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지눌의 『절요』도 사집과의 교재로서 채택되었다. 이후 두 문헌에 대한 주석서들이 많이 간행되었는데 합간되어 있는 사례가 많다. 『절요』에 대한 대표적인 주석서로는 상봉정원(霜峰淨源, 1627∼1709)의 『법집별행록절요과문(法集別行錄節要科文)』 1권(현존), 회암정혜(晦庵定慧, 1685∼1741)의 『별행록사기화족(別行錄私記畵足)』 1권(현존), 연담유일(蓮潭有一, 1720∼1799)의 『법집별행록절요과목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科目幷入私記)』 1권(현존)이 있다.
이를 통해 보면 17∼18세기에는 『절요』에 대한 많은 주석서들이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유일이 쓴 『도서과목병입사기』 권말에 붙은 「서요사기서(序要私記序)」에는 “서요[서(序)란 『선원제전집도서』를 가리키고, 요(要)는 『절요』 즉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를 가리킨다.]는 옛날에는 사기가 없었는데, 근래에 상봉노인이 그것을 썼으나 대단히 소략하여 부족함이 많았다. 그 후 설암·회암 두 선사가 그것을 계승하여 주석을 썼는데 비로소 정밀함을 얻어서 점차 뒤의 것이 앞의 것보다 나았다. 그러므로 회로(회암정혜)의 것이 가장 나았다. 그래서 제방에서 그것을 존숭하였다.[序要舊無私記 近古霜峰老人 剏爲之 頗踈略 未能盡善 嗣後雪岩晦庵兩大老 繼而因修 始得詳悉 而次次後勝於前 故晦老之第三記爲最 諸方宗之]”라고 되어 있다.
『법집별행록절요사기』는 조선시대 불교에 종밀과 지눌의 영향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특히 17∼18세기에 『선원제전집도서』와 『절요』에 대한 주석서들이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은 불교가 억압받았던 조선시대에도 나름대로 강학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