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63편의 시와 보제심여의 행장인 「보제강백전(普濟講伯傳)」으로 구성되어 있다. 칠언율시(七言律詩)와 칠언절구(七言絶句)가 대부분이다. 내용은 산에 사는 자신의 뜻과 심회를 읊은 것이 많다.
1책 필사본이다. 간기가 없어 발행자와 발행연도는 알 수 없다. 『한국불교전서』 제12책에 수록되어 있다.
행장인 「보제강백전」에 의하면, 보제심여는 실호(室號)가 포의(浦衣)이며, 속성은 마(馬)씨라고 한다. 전라도 강진(康津) 출신이다. 어려서 두륜산(頭輪山)에 들어가 가선대부(嘉善大夫) 희문(禧文)화상에게 출가하였으며, 문암(聞菴)에게서 계를 받고 초의의순(草衣意恂, 1786∼1866)에게서 보살계를 받았다. 그 후 철선(鐵船)·문암(聞菴)·용연(龍淵)·운거(雲居)·응화(應化)·영허(靈虛)·벽해(擘海) 등 7대 법사에게 참학하였으며, 주로 삼남(三南)지방에서 활동하였다. 금강산을 유람하고 돌아온 뒤 『금강산유산록(金剛山遊山錄)』 1편을 남겼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제자로는 만공(萬空)·부정(富定)·월파(月坡)·원준(圓俊) 등이 있었다고 한다.
『산지록(山志錄)』은 시 63편과 행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제강백전」의 저자는 알 수 없다. 시는 칠언율시와 칠언절구가 대부분이며, 오언율시는 8편만 있고 오언절구나 고시(古詩)는 전혀 없다. 시의 내용은 『산지록』이라는 제목처럼 산에 사는 자신의 뜻과 감회를 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 가운데서 특징적인 것은 「근차석옥화상거잡시십이율(謹次石屋和尙居雜詩十二律)」로서, 중국 원대(元代)의 승려인 석옥청공(石屋淸珙, 1272∼1352)의 시를 차운(次韻)한 것이다. 여기서는 산사의 그윽한 정경과 거기에서 지내는 즐거움과 흥취, 그리고 도심(道心)을 노래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정약용의 외손자이며 당시 뛰어난 문사였던 방산(舫山) 윤정기(尹廷琦)와 주고받은 「근차백학동방산선생화답운(謹次白鶴洞舫山先生和答韻)」을 비롯하여, 「여해제유공음(與海諸儒共吟)」과 같은 시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해남(海南)의 여러 선비들과 교유한 시도 보인다. 이와 같이 『산지록』에는 자연을 노래한 시들이 많지만, 당시의 어려운 사회상을 노래한 시들도 보인다. 예를 들어 「한심(旱甚)」에서는 “들 가득한 곡식 향기 어느새 재로 돌아가/ 보면 볼수록 애간장만 탈 뿐이네/ 자식의 배고픔을 구하지 못한 어미의 마음/ 하늘이시여! 비를 내려 백성의 아픔을 구해주소서![滿坪香稻幾成灰 看去看來肺臟焦 不救子飢慈母意 祈天降雨濟民哀]”라고 가뭄을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바로 뒤의 「우래(雨來)」에서는 “어제의 슬픈 마음 오늘은 기쁨이 되니/ 천제의 은덕을 입었다네/ 마의가 젖고 청산에는 비 내리니/ 들판은 촉촉하여 태평을 구가하네.[昨日悲心今日喜 幸蒙天帝眷輿情 麻衣坐濕靑山雨 野色油油唱太平]”라고 노래하고 있기도 하다. 시는 전체적으로 보면 평이한 편이지만, 때로 고사(故事)를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 후기 승려의 시집으로서, 출가 수행자로서 산에 은거하며 사는 즐거움을 노래한 것이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뭄의 고통을 토로한 시들도 있어, 조선 후기 삼남지방의 어려운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