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기의 승려이자 불교학자였던 김영수가 저술한 책이다. 권상로의 『조선불교약사(朝鮮佛敎略史)』(1917년),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1918년) 등을 이은 초기의 한국불교통사로서, 삼국시대·고려시대·이조시대의 총 3편으로 구성되었다. 『조선불교사(朝鮮佛敎史)』에서 주장된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불교종파인 오교구산설(五敎九山說)은 아직도 유효성을 가지는 중요한 학설이다.
『조선불교사』는 김영수가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로서 재직하던 1939년에 저술한 것이다. 이전에 발표한 「조선불교종지(朝鮮佛敎宗旨)에 대(對)하야」(『불교(佛敎)』105호, 1933), 「오교양종(五敎兩宗)에 대(對)하야」(『진단학보(震旦學報)』8호, 1937), 「조계선종(曹溪禪宗)에 취(就)하야」(『진단학보』9호, 1938) 등 본서의 핵심을 이루는 주장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일본학자들에 의한 식민지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일환이기도 했다.
1책으로 125페이지이다. 서울의 중앙불교전문학교에서 간행되었다.
김영수의 영수(英遂)는 법명이며, 호는 포광(抱光)이다. 두류산인(頭流山人)이라고도 한다. 12세에 출가하였으며 강원을 졸업한 후 남원의 실상사(實相寺), 보은의 법주사(法住寺) 등의 주지를 역임하였다. 35세 되던 1918년에는 서울의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가 되었다. 이때 그는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주력하였는데, 『조선불교사』는 그 성과로서 간행된 것이다.
총 3편으로 구성되는데, 제1편 삼국시대, 제2편 고려시대, 제3편 이조시대가 그것이다. 김영수는 한국불교의 종파를 오교구산시대(五敎九山時代: 삼국·통일신라) → 오교양종시대(五敎兩宗時代: 고려) → 선교양종시대(禪敎兩宗時代: 조선)의 흐름으로 파악하였다. 오교구산이란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존재했던 불교종파로서, 오교는 교종(敎宗)의 종파이며 구산은 선종(禪宗)의 종파이다.
『조선불교사』에서 그 성립의 연원을 밝혔는데, 오교 가운데 열반종(涅槃宗)은 보덕(報德, 7세기)이 『열반경』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개창하였고, 계율종(戒律宗)은 자장(慈藏, 7세기), 법성종(法性宗)은 원효(元曉), 화엄종(華嚴宗)은 의상(義湘)이 『화엄경』을 소의경전으로 하여 개창하였으며, 법상종(法相宗)은 진표(眞表, 8세기)가 개창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 구산선문 중 가지산문(迦智山門)은 도의(道義), 실상산문(實相山門)은 홍척(洪陟), 동리산문(桐裡山門)은 혜철(慧徹, 785∼861), 봉림산문(鳳林山門)은 현욱(玄昱, 787∼868), 사자산문(獅子山門)은 도윤(道允, 798∼868), 성주산문(聖住山門)은 무염(無染, 800∼888), 사굴산문(闍崛山門)은 범일(梵日, 810∼889), 희양산문(曦陽山門)은 도헌(道憲, 824∼882), 수미산문(須彌山門)은 이엄(利嚴, 866∼932)이 각각 개창했다고 주장하였다.
또 오교양종은 고려 숙종조 이후의 불교종파를 총칭하는 말로서, 오교란 교종으로서 법상종(法相宗)·원융종(圓融宗)·열반종(涅槃宗)·법성종(法性宗)·계율종(戒律宗)을 말하고, 양종이란 선종으로서 조계종(曹溪宗)과 천태종(天台宗)을 가리킨다. 『조선불교사』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담고 있는데, 제1편 삼국시대 제5장 「교리천명」에서 오교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제6장 「선종의 전래」에서는 구산선문에 대한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나아가 제2편 고려시대 제10장 「오교양종」에서는 오교양종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오교구산과 오교양종의 개념은 저자에 의해 최초로 주장된 것으로서, 일부의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최근까지 높은 지지를 받으면서 통설화되어 왔다.
『조선불교사』는 최초기의 한국불교통사로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밝히려고 노력했던 역작이다. 이 책에서 주장된 오교구산설과 오교양종설은 부분적으로 보완해야 할 점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통설로서 인정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선종 최초의 종파로서 구산선문이 존재했다는 주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