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화상찬(利貞和尙贊)」은 『고운집(孤雲集)』 권3 찬(贊)과 『가야산해인사사적기(伽倻山海印寺寺籍記)』에 실려 있다. 이는 해인사가 창건된 지 100여 년이 지난 후 해인사에 머물렀던 최치원이 쓴 이정에 관한 글이다. 『석이정전(釋利貞傳)』도 있었으나 현재는 전하지 않고, 단편적인 자료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수록되어 있다.
이정은 신라왕실의 후원을 받아 이루어진 불사인 해인사 창건을 완성한 인물이다. 의상계 화엄종 승려로 입당하여 우두선(牛頭禪)을 익혀 교선일치(敎禪一致) 사상 경향을 지녔던 승려이다. 이정과 관련된 자료가 부족하여 그의 저술이나 작품, 묘소 등은 알 수 없다. 다만, 900년경에 해인사에 머물던 최치원은 이정의 전기를 찬술하였다. 이때 해인사를 창건한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그를 추모하는 사업이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최치원의 『석이정전』과 「이정화상찬」은 그에 대한 재평가와 추모의 결과로 찬술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정화상찬」에서 최치원은 그가 해인사를 창건한 사실을 높게 평가하였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 조각 구름이요 한 마리 학처럼 / 片雲獨鶴
암학에서 홀로 그림자와 짝하다가 / 儷影嚴壑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사원을 처음 세워 / 草創蓮刹
혼돈에 구멍이 뚫리게 하였나니 / 混沌逢鑿
서원이 막힘없이 시원하게 통해 / 願霈無礙
인간과 천상이 모두 의지하는도다 / 人天有托
해인사 창건을 완성한 이정에 대한 기록 가운데 최치원이 지은 유일한 시이다. 이 시를 통하여 최치원이 이정을 얼마나 찬양하였는가를 알 수 있으며 당시 최치원의 사상도 함께 유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