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봉시집(千峰詩集)』은 1권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250에 “『천봉집(千峰集)』 1권은 고려 승려 만우가 지었다. 호는 천봉이다.[千峰集一卷 高麗僧卍雨著號千峰]”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용재총화(傭齋叢話)』 권6과 『고선책보(古鮮冊譜)』 2에 “지금 『천봉집』이 세상에 간행되어 있다.[今有千峰集行于世]”라는 것에서 『천봉집』이 만우의 저작임을 알 수 있다.
만우는 일명 만우(卍雨)라고 하며, 구곡(龜谷) 각운(覺雲)의 후계이며, 호는 천봉(千峰)이다. 어릴 때부터 학문에 힘써 내외경전에 밝았다. 시를 또한 잘하여 목은(牧隱) 이색(李穡),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등과 교유하였다. 만우의 시재(詩才)와 시풍(詩風)에 대해서는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의 시 「무태의 시권에 쓰다(書無怠詩卷)」(『점필재집』 시집 제21권 기)나 『도은집(陶隱集)』 권5에 실린 「천봉의 시고 뒤에 제하다[題千峯詩藁後]」에 잘 나타나 있다.
『도은집』에서 이숭인은 “만우가 나를 따라 객지에서 우거하며 한 달 남짓 지났을 적의 어느 날 그가 지은 시 1질(秩)을 꺼내어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청(淸)하면서도 고(苦: 맛이 쓴 것)하지 않고, 졸(拙)하면서도 야(野: 촌스러운 것)하지 않고, 유(腴)하면서도 이(膩: 느끼한 것)하지 않아서, 오래 읽으면 읽을수록 그만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당나라 구승(九僧)의 시집(詩集)이 세상에 전해지기에 내가 언젠가 대략적인 내용을 살짝 훑어본 적이 있었는데, 만우가 얻은 시를 그것들과 비교할 때 어찌 많이 양보해야 할까 보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시의 기교 우열을 가지고 우리 만우를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라고 만우의 시풍을 평가하였다.
따라서 『천봉시집』은 만우의 시풍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추정되지만 전하지 않아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송일본승문계(送日本僧文溪)」(오언율시)와 「산중(山中)」(오언율시) 등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