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유음(太古遺音)』은 6책으로 되어 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고선책보(古鮮冊譜)』 권3과 『나려예문지(羅麗藝文志)』에 보우가 『태고유음』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보우는 석옥청공(石屋淸珙)의 임제선(臨濟禪)을 계승하여 고려 말 불교계에 큰 영향을 끼친 승려이다. 초명은 보허(普虛), 휘는 보우, 호는 태고(太古)이며 시호는 원증국사(圓證國師)이다. 고려 말에 백운(白雲)·나옹(懶翁)과 함께 여말3가(麗末三家)라고 불리는 승려이다.
보우가 시문에 능했다는 것은 그의 저서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에 127수의 시가 실려 있어 이를 알 수 있다. 보우의 시는 깨달음과 출세간의 생활을 스스로 읊은 가음명시(歌吟銘詩)와 주변 지인들의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가르침을 주는 명호시(名號詩), 승속(僧俗)의 특정인물에게 주는 증여시(贈與詩), 부처를 비롯한 불교적 인물을 칭송하는 송도시(頌禱詩) 등 상당히 폭넓은 주제성을 보이고 있다. 이들 시는 성불(成佛)의 이념과 선관련 다양한 가르침인 화두(話頭)를 의심하는 간화선(看話禪) 수행에 관한 것, 유심정토(唯心淨土) 차원의 염불수행에 관한 것, 불교의 핵심 사상인 중도(中道)의 진리인 유무(有無)·색공(色空)·선악(善惡) 등 일체의 양변을 두루 융합하는 걸림없는 자리리타행(自利利他行)을 실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시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 한성부(漢城府) 중흥사(重興寺)조에 “고려조의 중 보우가 일찍이 절 동쪽 봉우리에 집 짓고 살며 태고라고 편액하고, 영가체(永嘉體)를 모방하여 노래 한 편을 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이 「태고암가(太古庵歌)」이다. 이 시는 ‘태고’라는 무한의 시간이 지금과 맞닿는 점에서 시간의 초월성을 보이고, 암자라는 좁은 공간에 천지사방을 수용한 공간의 초탈을 의미하는 것으로, 불교 득도의 경지를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