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한화집 ()

불교
문헌
대한제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승려, 경봉정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정의
대한제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승려, 경봉정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간행한 시문집.
서지적 사항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정석을 모셨던 제자 명정(明正)이 1979년에 스승의 글을 모아 간행한 책이다. 이 책은 약 250여 편에 이르는 경봉의 글을 모은 책으로 그의 문집(文集)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대의 고승과 재가신도와 주고받은 시뿐만 아니라 교유했던 다양한 인사들과 오고 간 편지, 고승에 대한 추모사 등 다양한 그의 글이 수록되었다. 특히 경허·만공·수월과 함께 근세에 선풍(禪風)을 중흥시킨 방한암(方漢岩, 1876∼1951)과 주고받은 글은 수행과 함께 당시 불교계의 동향을 반영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내용

경봉은 법명(法名)이 원광(圓光), 법호(法號)가 경봉이다. 1907년 경상남도 양산 통도사의 성해(聖海)에게 출가하여 사미계를 받은 뒤,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하여 불경연구에 몰두하였다. 1935년에는 통도사 주지, 1941년에는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3년에 통도사 극락호국선원 조실(極樂護國禪院祖室)이 되었다. 1967년 서울탑골공원에 ‘만해선사기념비’를 세우고 ‘경봉장학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한시와 묵필에도 뛰어났으며 선지식(善知識)으로는 드물게도 70여 년 동안 계속 일기를 남기기도 하였고, 지금 흔히 쓰는 해우소(解憂所)라는 말도 경봉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원광한화집』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의 한국불교 동향을 묘사하고 있으며, 특히 산중불교를 벗어나 전문수행처와 포교원을 설립하고 다양한 대중법회를 개설하는 등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그의 노력이 담겨있다. 또한 당대의 여러 고승(高僧)들과의 서신을 통해 교단의 개혁이나 선풍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한국근현대불교에 대한 입문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이 외에도 저서에 『법해(法海)』, 『선문흑일점(禪門黑一點)』, 『속법해(續法海)』, 『화중연화소식(火中蓮華消息)』, 『삼소굴일지(三笑窟日誌)』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경봉이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살면서 한국불교계를 주도했던 대표적인 승려인 만큼 그의 문집은 한국근현대불교사를 대변하고 있다. 『원광한화집』은 격동기 한국 불교계의 여러 장면을 담고 있어 근현대불교사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당대의 고승들과 교유했던 흔적을 남기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와 해방이라는 격동기 속에서 일본불교의 잔재 청산과 수행 전통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 선(禪)의 대중화에 진력했던 모습, 당시 불교계의 동향 등을 살필 수 있다. 더욱이 이 시기의 한국불교에 대한 정책과 포교, 그리고 수행의 단면을 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경봉선사연구』(정도, 운주사, 2013)
『원광한화집』(경봉, 극락호국선원, 1979)
『한국불교찬술문헌총록』(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동국대학교출판부, 1976)
집필자
오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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