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요의문답』은 남북국 시대 통일신라 승려 지통이 스승 의상의 『화엄경』 강의를 기록한 불교 서적이다. 의상이 소백산 추동에서 진행한 『대방광불화엄경』 강의를 문답 형식으로 기록하였는데, 기존에는 이 저술이 현존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어 다른 문헌에 인용된 단편을 통해서 대략의 성격만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 법장의 저술로 일본에 전해져온 『화엄경문답』이 『화엄요의문답』 즉 『지통기』의 이본으로 밝혀져 이 책의 전문이 이용 가능하게 되었다.
의상(義湘)이 소백산 추동에서 『화엄경』에 대해 강의를 하고 지통(智通)이 이를 기록한 것이다. 지통은 의상의 제자로서 중국 찬녕(贊寧)이 지은 『송고승전(宋高僧傳)』과 고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모두 의상의 뛰어난 제자로 거론하였다. 지통은 노비 출신으로 661년 7세 때 낭지(朗智)에게 배우고 후에 의상의 제자가 되었다. 지통은 소백산 추동, 태백산 대로방(大盧房), 부석산 등지에서 의상의 강의를 들었으며 태백산 미리암굴(彌理岩窟)에서 화엄관을 수행하여 의상의 인가를 받고 「법계도인」을 전수받았다고 전해진다.
고려 의천(義天)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서는 지통이 의상의 강의를 기록한 저술로서 『화엄요의문답(華嚴要義問答)』[또는 『추혈문답(錐穴問答)』]을 소개하였다. 의천은 『화엄요의문답(華嚴要義問答)』이 방언과 한문이 섞여 온전한 한문 문헌이 아니어서 후대에 윤색이 필요하다고 평가하였다. 실제로 『고려사』에 의하면 문신 이장용(李藏用)이 『화엄추동기(華嚴錐洞記)』를 윤색하였다고 한다.
한편 근래까지 『화엄요의문답』 또는 『추혈문답』 등의 제목을 가진 지통의 강의 기록이 현존하지 않고 다만 균여의 저술과 『법계도기총수록』 등에 단편이 인용되는 것 뿐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일본에 전해져오는 『화엄경문답(華嚴經問答)』이 『화엄요의문답』 , 즉 『추혈문답』의 이본(異本)임이 밝혀졌다. 이 『화엄경문답』이 기존에는 주1의 저술로 알려져 있으면서도 법장의 저술 여부를 놓고 예로부터 논란이 많았었는데, 지통의 『화엄요의문답』의 이본으로 밝혀진 것이다.
참고로 현존 목록류에서는 '화엄요의문답(華嚴要義問答)'이라는 서명을 지통의 강의 기록인 이 문헌 외에도 중국 주2의 『화엄오십요문답(華嚴五十要問答)』과 통일 신라 시대 표원(表員)의 『화엄경문의요결문답(華嚴經文義要決問答)』의 이칭(異稱)으로도 사용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진정사효선쌍미(眞定師孝善雙美)」조에 의하면, 진정(眞定)은 의상의 십성제자(十聖弟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가난한 군졸 출신이었던 그는 출가한 지 3년이 지났을 때 어머니의 부음을 전해 듣고 선정에 들어가 이레 만에 선정에서 나온 뒤 의상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의상은 문도들을 거느리고 소백산 추동으로 가서 풀을 엮어 초막을 짓고 90일 동안 『화엄경(華嚴經)』을 강의하였다. 그의 제자인 지통이 강의를 따라 그 요점을 간추려 『추동기』 2권을 지었고, 이를 세상에 유통시켰다고 한다.
『화엄요의문답』이란 제목의 저술은 현존하지 않지만, 그 이본으로 밝혀진 『화엄경문답』이 현존하므로 이를 통해서 구성과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현존 『화엄경문답(華嚴經問答)』은 상, 하 2권으로서 중복된 문답을 감안하면 총 163개의 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다. 163개의 문답은 내용에 따라서 첫 번째 부분은 삼승(三乘)과 일승(一乘)의 관계를 중심으로 하여 일승보법(一乘普法)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밝힌 부분이다. 두 번째 부분은 십지(十地)의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자체불(自體佛)에 대한 내용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 부분은 전체 문답의 약 50여문답에 걸쳐 있다. 세번째 부분은 연기(緣起)와 성기(性起)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약 60여 문답을 차지한다.
『화엄요의문답』은 당 유학에서 돌아온 의상이 소백산 추동에서 행한 『화엄경』 강의를 지통이 듣고 기록한 것이므로 의상이 귀국한 뒤 신라에서 펼친 그의 화엄사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