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요의문답(華嚴要義問答)』 2권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그 단편들이 균여(均如, 923∼973)의 저술과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에 인용되어 전한다. 『화엄요의문답』은 줄여서 『요의문답』이라고 하며, 『추혈문답(錐穴問答)』·『추동기(錐洞記)』·『추혈기(錐穴記)』·『지통문답(智通問答)』·『지통기(智通記)』 등으로도 불렸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5 「진정사효선쌍미(眞定師孝善雙美)」조에 의하면, 진정(眞定)은 의상의 십성제자(十聖弟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가난한 군졸 출신이었던 그는 출가한 지 3년이 지났을 때 어머니의 부음을 전해 듣고 선정에 들어가 이레 만에 선정에서 나온 뒤 의상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의상은 문도들을 거느리고 소백산 추동으로 가서 풀을 엮어 초막을 짓고 90일 동안 『화엄경(華嚴經)』을 강의하였다. 그의 제자인 지통이 강의를 따라 그 요점을 간추려 『추동기』 2권을 지었고, 이를 세상에 유통시켰다고 한다.
지통은 의상의 십성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지통은 본래 노비였으나 7세 때 낭지(朗智)에게 출가하였다가 뒤에 의상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소백산 추동, 태백산 대로방(大盧房), 부석사 등지에서 의상의 강의를 직접 들었으며, 태백산 미리암굴(彌理岩窟)에서 화엄관(華嚴觀)을 수행하였다.
『법계도기총수록』에 인용된 『추혈문답』에는 “자신의 미래불이 도로 자신을 교화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에 의하면, 나로 하여금 발심수행하게 하는 부처는 이미 성불한 나의 당과불(當果佛)이며, 내가 당과불을 얻는 때에 삼세 부처의 평등법을 얻는다고 설명하였다. 또 나의 부처는 모든 법계의 유정·무정 가운데 온전히 즉(卽)해 있으므로 하나의 사물이라도 오체불(五體佛) 아님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만일 능히 자체불(自體佛)에게 예경할 수 있다면 예경하지 못할 사물이 없다고 하였다.
『법계도기총수록』에 인용된 『추혈기』에서는, 하나를 듦에 따라 일체를 다 섭수(攝受)하는 다함없는 연기법과 보법연기의 도리에 대해 설명하였다. 균여의 저술에 인용된 『지통기』에서는, 견문(見聞) 등의 3위(位)는 보법정위(普法正位)가 아니라고 하고 만약 보법정위라면 위(位)도 없고 위 아님도 없으며 일체 6도(道) 삼계의 법계(法界) 법문이 보법정위 아님이 없다고 설명하였다. 이외에 『지통기』에서는 십불(十佛)과 삼신(三身)의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화엄요의문답』은 소백산 추동에서 행한 의상의 『화엄경』 강의를 지통이 듣고 기록한 것이므로 의상이 귀국한 뒤 신라에서 펼친 그의 화엄사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