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추동기』는 통일신라 화엄 승려 의상(義相)의 『화엄경』 강설을 그의 제자 지통(智通)이 기록한 불교서이다. 의상은 소백산 추동(錐洞)에서 90일 동안 『화엄경(華嚴經)』을 강의하였다. 이것을 그의 제자인 지통이 집록(集錄)하여 『추동기(錐洞記)』 2권으로 만들어 유통시켰다. 고려 말에 이르러 이장용이 이것을 윤색하였으나, 현재 이 본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에는 이 본과 별도로 법장(法藏)의 저술로 알려진 『화엄경문답(華嚴經問答)』이 전해져 왔는데 근래 연구에 의하여 이 문헌이 『추동기』의 이본(異本)임이 밝혀졌다.
신라시대에 의상(義湘, 625∼702)은 소백산 추동(錐洞)에서 90일 동안 『화엄경(華嚴經)』을 강의하였다. 이것을 그의 제자인 지통(智通, 655∼?)이 집록(集錄)하여 『추동기(錐洞記)』 2권으로 만들어 유통시켰다. 의천이 『신편제종교장총록』을 저술할 당시에도 『추동기(錐洞記)』 유통본을 보았는데, 의천은 문장이 조잡하고 신라 방언이 섞여 있었다고 하였다.
고려 말에 이르러 이장용이 이것을 윤색하였으나, 현재 이 본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일본에는 이 본과 별도로 법장(法藏)의 저술로 알려진 『화엄경문답(華嚴經問答)』이 전해져 왔는데 근래 연구에 의하여 이 문헌이 『추동기』의 이본(異本)임이 밝혀졌다.
의천(義天, 1055∼1101)은 그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서, 당시 유통되던 『요의문답(要義問答)』(즉 『추혈문답(錐穴問答)』)과 『일승문답(一乘問答)』(즉 『도신장(道身章)』)에 대해 이것을 집록한 이의 문체가 아름답지 못하여 문장이 조잡하고 방언이 섞여 있으므로 후대의 군자가 윤색하기를 바란다고 기록하였다.
『고려사(高麗史)』 권102에 의하면, 이장용은 고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한 후 서경사록(西京司錄)에 임명되었다가 내직에 들어와 교서랑(校書郞) 겸 직사관(直史館)이 되었다. 그 뒤 여러 차례 승진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임명되었으며, 원종(元宗) 때에는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가 되었고,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올랐다. 그는 성품이 총명하고 공손하였으며, 경서와 사서를 널리 읽었고 음양(陰陽), 의약(醫藥), 율력(律曆)에 통달하였다. 문장에 뛰어났으며, 불교 서적을 좋아하여 『선가종파도(禪家宗派圖)』를 저술하였고 『화엄추동기』를 윤색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