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소남리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문화재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널무덤 등이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
정의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와 돌널무덤 등이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
개설

남강댐 보강과 제방 신설구역에 포함되어 1995년∼1998년에 신라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에서 3차례에 걸쳐 발굴조사하였다. 조사결과 신석기시대 주거지 2기, 적석유구 1기, 청동기시대 주거지 50여기, 수혈유구 1기, 석관묘 4기, 폐기장 5기, 원삼국시대 주거지 161기, 수혈유구 8기, 구상유구 1기 및 삼국시대의 횡혈식석실묘 4기가 확인되었다.

내용

청동기시대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장방형, 말각장방형, 타원형, 원형 등으로 다양하다. 장방형주거지의 규모는 400∼1,860×400∼700×20∼130㎝ 내외의 중 · 대형에 속하며, 내부시설로는 주혈과 벽구가 있다. 이중 길이 17.1m, 너비 8.3m에 10개의 초석과 53개의 주혈, 45개의 벽주혈, 2개의 노지가 설치된 초대형의 장방형주거지도 확인된다. 타원형주거지의 규모는 280∼600×200∼600×20∼30㎝ 내외로 소 · 중형에 속한다. 석관묘의 규모는 118×58×36㎝로 장벽은 판석 2매, 단벽은 1매를 이용하여 축조하였고, 바닥은 판석 2매를 깔았다.

청동기시대 유구에서는 빗살무늬토기와 같은 태토를 사용한 무문토기로 구순각목문, 공열문, 각목돌대문이 시문된 토기와 빗살무늬토기의 기형과 유사한 첨저형의 무문토기, 4개의 귀를 붙인 것처럼 보이는 절상돌대문토기, 홍도, 방추차, 어망추 등의 토기류와 삼각형석도, 석촉, 석검, 유구석부, 갈판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 주거지는 대체로 직경 7~10m에 이르는 원형주거지이다. 바닥은 점토다짐 또는 불다짐하여 단단하게 하였고, 아궁이가 갖추어진 노지도 확인되었다. 유물은 적갈색 연질토기, 소뿔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시루, 단경호, 접시 등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횡혈식석실묘는 모두 평면 장방형이다. 유물은 개배, 대부장경호, 개(蓋), 병(甁), 합(盒) 등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산청소남리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인간생활이 이루어진 흔적이 남아 있는 대규모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초기의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 삼국시대 연질토기와 일본의 야요이식토기가 확인되며 2만여점의 석기류가 출토되어 신석기문화에서 청동기문화, 철기문화로 이어지는 한반도 남부지방의 문화변천양상을 설명할 수 있으며, 시대 편년 연구에도 획기적인 자료이다. 또한 일본과의 교류관계를 밝혀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산청 소남리 유적」(배진성, 『영남고고학』 22, 1998)
「산청 소남리 취락유적」(안춘배, 『환호취락과 농경사회의 형성』영남고고학회·구주고고학회 제3회 합동고고학대회, 1998)
집필자
윤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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