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장방형, 말각장방형, 타원형, 원형 등으로 다양하다. 장방형주거지의 규모는 400∼1,860×400∼700×20∼130㎝ 내외의 중 · 대형에 속하며, 내부시설로는 주혈과 벽구가 있다. 이중 길이 17.1m, 너비 8.3m에 10개의 초석과 53개의 주혈, 45개의 벽주혈, 2개의 화덕자리(노지)가 설치된 초대형의 장방형주거지도 확인된다. 타원형주거지의 규모는 280∼600×200∼600×20∼30㎝ 내외로 소 · 중형에 속한다. 석관묘의 규모는 118×58×36㎝로 장벽은 판석 2매, 단벽은 1매를 이용하여 축조하였고, 바닥은 판석 2매를 깔았다.
청동기시대 유구에서는 빗살무늬토기와 같은 태토를 사용한 민무늬토기(무문토기)로 구순각목문, 구멍무늬(공열문), 각목돌대문이 시문된 토기와 빗살무늬토기의 기형과 유사한 첨저형의 무문토기, 4개의 귀를 붙인 것처럼 보이는 절상돌대문토기, 붉은 간토기(홍도), 가락바퀴(방추차), 그물추(어망추) 등의 토기류와 삼각형 돌칼(석도), 돌살촉(석촉), 돌검(석검), 홈자귀(유구석부), 갈판 등의 석기류가 출토되었다.
원삼국시대 주거지는 대체로 직경 7~10m에 이르는 원형주거지이다. 바닥은 점토다짐 또는 불다짐하여 단단하게 하였고, 아궁이가 갖추어진 노지도 확인되었다. 유물은 적갈색 연질토기, 소뿔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시루, 단경호, 접시 등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횡혈식석실묘는 모두 평면 장방형이다. 유물은 뚜껑접시(개배), 대부 긴 목항아리(장경호), 뚜껑(蓋), 병(甁), 합(盒) 등이 출토되었다.
산청 소남리 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여러 시대에 걸쳐 인간생활이 이루어진 흔적이 남아 있는 대규모 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초기의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의 무문토기, 삼국시대 연질토기와 일본의 야요이식토기가 확인되며 2만여 점의 석기류가 출토되어 신석기문화에서 청동기문화, 철기문화로 이어지는 한반도 남부지방의 문화변천양상을 설명할 수 있으며, 시대 편년 연구에도 획기적인 자료이다. 또한 일본과의 교류관계를 밝혀주는 자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