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울산광역시 남구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무논이 발굴된 마을터. 취락유적.
개설
내용
청동기시대 유적은 구릉의 남쪽 사면을 중심으로 독립된 단위의 대규모 취락이 확인되었다.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장방형과 방형이다. 크기는 장방형의 경우 최대길이 800∼900㎝, 최대폭 500㎝ 내외이고, 방형은 길이와 폭이 500㎝ 이내인 것이 대부분이다. 내부시설로 벽구를 포함함 벽체시설, 화덕자리(노지), 외부돌출구 등 주거양식이 안정되고 정형화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물은 구멍무늬토기(공열문토기), 단사선문토기, 돌검(석검), 돌살촉(석촉), 합인석부, 편평한 자귀날도끼(편평편인석부), 홈자귀(유구석부), 돌끌(석착), 돌칼(석도), 부리형석기, 그물추(어망추), 가락바퀴(방추차) 등이 출토되었다. 이외에도 구릉에서는 수혈유구가 확인되었다.
구릉 아래 저지대에는 부분적으로 논이 확인되었다. 평면형태는 방형, 장방형, 부정형 등이다. 논둑은 폭 16∼52㎝, 높이 1.4∼6㎝ 내외이며, 둑의 단면은 대형(臺形) 또는 반원형이다. 수로는 구릉 사면과 골짜기의 경계부에 설치되었으며, 청동기시대에 구축하여 이후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일정시기까지 계속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삼국시대 유적은 구릉 아래 저지대에서 논과 수혈유구가 확인되었다. 논은 저지대 전면에 조성되었으며, 기존의 논 조성 여건이 안정화되는 단계이다. 수로는 노출된 수전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확인되지 않으나 현대 수전의 관개 및 배수체계로 보아 조사구역 남단의 수로를 이용하였을 것이다.
의의와 평가
그리고 청동기시대의 취락과 동시기의 논이 함께 조사되었다는 점은 당시 사회를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동일한 범위 내에서 층위를 달리하면서 청동기시대-삼국시대-조선시대의 논이 조사됨으로써, 시대별 형태와 토지이용방법, 관개체계 등을 상호 비교할 수 있는 점은 농업발달사의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이상길·이현석·곽종철, 제42회 전국역사학대회 발표요지,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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