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음동, 선암동 일원의 도로건설구간으로 2000년 밀양대학교박물관이 시굴조사하였고, 2000~2001년 밀양대학교박물관과 동의대학교박물관이 발굴조사하여 저구릉(Ⅰ지구)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43기, 성격불명의 반원형 구상유구 1기와 연대·성격불명의 수혈유구 6기, 삼국시대 토기매납유구 1기, 곡부(Ⅱ지구)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 3기, 청동기∼삼국시대, 조선시대의 논, 현대 수로 등이 각각 확인되었다.
유적은 해발 63m 내외의 저구릉(I지구)과 구릉사이 곡부의 입구부 지역(Ⅱ지구)에 각각 입지하며, 위치상 두 지역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유적에서 북쪽으로 1.3㎞ 지점에는 여천천이 위치하며, 하천은 서에서 동으로 흘러 태화강으로 유입된다.
I지구는 대규모 주거지가 군집한 주거지역이며,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크게 방형과 장방형으로 구분된다. 주거배치는 구릉 정상부와 사면에 중소형의 방형·장방형 주거지가 고루 분포하고 대형 장방형주거지는 구릉 정상부에만 입지한다. 주거지의 세부적인 특징을 보면 바닥은 대부분 굴광면을 그대로 사용하며 일부 바닥다짐, 불다짐 등이 확인된다. 노지는 대부분 1기가 설치되었으며 수혈식으로 중앙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주거지내 가장자리를 따라 설치된 벽구시설은 벽면을 따라 단순히 돌린형태, 홈의 형태로 나열된 것, 구와 홈이 결합된 것, 벽구가 2개인 것 등 다양하다. 주혈은 중심기둥, 보조기둥, 벽기둥, 벽구내 소주혈, 수혈부 외부주혈 등이 확인된다. 주거지 외부시설은 매몰토에서 풍화 암반편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벽재를 보강하는 주제대(周堤帶)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일부 주거지들은 개수·개축의 흔적도 확인된다. 유물은 무문토기(심발형토기, 호형토기, 파수부심발형토기, 발형토기 등), 석기(이단병식·마제석검, 마제석촉, 합인석부, 편평편인석부, 환상석부, 장주형석도, 지석 등) 및 석재박편, 어망추, 방추차 등이 출토되었다.
Ⅱ지구는 구릉사이 개석곡부지역으로 논유구가 확인되었다. 퇴적층은 총 30개 층위로 나누어지며, 크게 조선시대현대층(1층∼18층)과 청동기시대 이전삼국시대층(19층~30층)으로 구분된다. 이중 후자는 청동기시대 논층(36면), 청동기시대∼삼국시대 논층(38면), 삼국시대 논층(41면)으로 세분된다. 논은 모두 곡부 내 미지형 경사를 따라 형성된 계단식 논으로 세부적인 구조는 확인하기 어려우며 평면형태는 호상(弧狀)이다. 청동기대 논의 폭은 30∼50㎝ 정도로 삼국시대 하층논에 비해 좁다. 청동기시대∼삼국시대 논의 폭은 23∼80㎝ 정도이며, 삼국시대 논의 폭은 50∼110㎝ 정도이다. 각 시대별 논층들은 반습답(半濕畓)∼습답으로 추정된다.
야음동유적은 대규모 취락유적으로 구릉지역을 중심으로 한 주거역, 곡부를 중심으로 한 생산역(논) 등이 확인되었으며, 분묘역은 조사지역에 분묘가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인접한 다른 공간에 분포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출토유물 등으로 보아 유적의 존재 시기는 청동기시대 전기후반에서 중기단계로 취락구조와 생산유구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 및 생활상을 잘 엿 볼 수 있는 유적으로 생각된다. 발굴조사 완료 이후 I지구의 35호 주거지는 전사하여 전시자료로 활용되었으며, Ⅱ지구의 유구들은 모두 현지에 성토, 보존하고 안내입간판을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