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에 경주 남산(南山)에 있었던 사찰이다. 창건과 폐사 시기는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다.
남산 동쪽의 산기슭에 피리촌(避里村)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 이름에 의하여 피리사라고 하였다. 또 피리사 옆에는 양피사(讓避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역시 마을 이름에 의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피리사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이상한 승려가 있었는데, 항상 미타(彌陀)를 염불하였다. 그 소리가 성(城) 안에 가득하여 360방(坊) 17만호(戶)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고, 소리의 높낮이가 없이 한결같이 낭랑하였다. 이로써 이상하게 여겨서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를 모두 염불사(念佛師)라고 불렀다. 그가 죽은 뒤에 진흙으로 그의 소상(塑像)을 만들어 민장사(敏藏寺)에 안치하고, 그가 거주하였던 피리사는 염불사(念佛寺)라고 이름을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