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사 종명 ( )

고대사
유물
경상남도 진주시의 연지사(蓮池寺)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동종(銅鐘)에 새겨진 명문(銘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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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진주시의 연지사(蓮池寺)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동종(銅鐘)에 새겨진 명문(銘文).
개설

연지사종은 ‘태화칠년(太和七年)’인 883년에 제작되었는데, 높이는 111.1㎝이고, 구경은 66.3㎝이다. 명문은 유곽(乳廓) 사이의 상대에 가깝게 가로 15.6㎝, 세로 8.3㎝ 규모의 크기에 양각되었는데, 제2행 아랫부분의 4자 ‘칠백십삼(七百十三)’만은 음각되었다.

내용

연지사종명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태화(太和) 7년 3월 일에 청주(菁州) 연지사의 종이 이루어졌다. 전하건대 들어간 쇠가 합하여 713정(廷)인데, 원래의 쇠가 498정이고, 더 들어간 쇠가 110정이다.

성전화상(成典和上)은 혜문법사(惠門法師)와 □혜(□惠)법사이며,

상좌(上坐)는 칙충(則忠)법사이며, 도내(都乃)는 법승(法勝)법사이다.

경촌주(卿村主)는 삼장급간(三長及干)과 주작대내마(朱雀大奈麻)이며,

작한사(作韓舍)는 보청군사(寶淸軍師)와 용년(龍年)군사이다.

사육□(史六□)은(는) 삼충사지(三忠舍知)와 행도(行道)사지이며.

종을 만든 박사(博士)는 안해애대사(安海哀大舍)와 애인(哀忍)대사이다.

때의 주통(州統)은 황룡사(皇龍寺) 각명(覺明)화상이다.

특징

비천상(飛天像)은 신라종(新羅鐘)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유려하게 조식되었으며, 보화형(寶花形) 구름 위에 천의(天衣)자락을 날리며 무릎을 꿇고 주악(奏樂)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비천상은 통일신라시대 동종의 전·후기를 구분하는 지표로 이해하고 있다. 또한 명문에는 ‘군사(軍師)’와 ‘도내(都乃)’ 등 신라 하대의 지방관직과 승관직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현황

현재 일본 복정현(福井縣) 돈하시(敦賀市) 상궁신사(常宮神社)에 소장되어 있으며, 일본 신국보(新國寶)로 지정되어 있다. 오랫동안 바닷바람 때문에 녹이 슬어서 탁본이 곤란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연지사종은 16세기 말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왜군(倭軍)이 약탈하여 간 것으로 전하고 있으며, 일본에 전해진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된 범종(梵鐘)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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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종연구』(염영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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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이두문의 해독」(남풍현, 『서지학보』 9, 1993)
「금석문에 나타난 이두 연구」(최범훈, 『논문집』 21, 1987)
「재일조선범종고」(이홍직, 『한국고문화논고』, 을유문화사, 1954)
「新羅鐘銘の再檢討(1) -敦賀市․常宮神社所藏の‘鐘の記’と菁州蓮池寺鐘-」(浜田耕策, 『史淵』 129, 1992)
「在日本新羅鍾の銘文 -靑丘遺文(2)-」(藤田亮策, 『大和文化硏究』 3-3·4合, 1955)
「晉州蓮池寺鍾記」(鮎貝房之進, 『雜攷』 6-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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