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내원리의 전(傳)‘보선암 절터’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납석제사리호조상기(蠟石製舍利壺造像記)의 명문(銘文).
개설
내용
영태 2년 병오 7월 2일에 법승(法勝)과 법연(法緣) 두 스님이 함께 받들어 돌아가신 두온(豆溫) 애랑(哀郞)의 원(願)을 위하여 석비로자나불(石毘盧遮那佛)을 조성하고 안에 무구정광다라니(無垢淨光陀羅尼)를 함께 넣고 석남사(石南寺) 숲 깊은 곳에 있는 관음암(觀音巖)에 둡니다. 원컨대 이것은 두온 애랑의 영신(靈神)이나 두 스님이나 혹은 이것을 본 사람이나 비로자나불을 향하여 정례(頂禮)하고 멀리서 들은 사람이나 기뻐하는 사람이나 (불상의) 그림자를 지나는 무리나 불어서 지나가는 바람이 지나간 어느 곳에 일체중생이나 일체 모든 삼악도(三惡道)의 업(業)이 소멸하여 스스로 비로자나임을 깨닫고 세상을 떠나기를 서원(誓願)합니다.
(바닥면)
호(壺) 안의 것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은혜를 항성(恒性)으로 삼는 것이다. 두 개 반의 약(藥)은 꺼내어 병을 □하여 쫓는 것.
특징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금석문집성』 14(김복순·한정호, 한국국학진흥원, 2012)
- 『한국조각사』(문명대, 열화당, 1997)
- 『역주 한국고대금석문』 Ⅲ(한국고대사연구소 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 「영태이년명 석비로자나불 조상기에 대하여」(김성주·박용식, 『배달말』 56, 2015)
- 「한국비로자나상의 성립과 전개 -원융의 도상적 실현-」(강우방, 『미술자료』 44, 1990)
- 「영태이년명 석조비로자나불 조상기의 이두문 고찰」(남풍현, 『신라문화』 5, 1988)
- 「영태이년명 석조비로자나좌상 -지리사 내원사 석불 탐사 시말-」(박경원, 『고고미술』 168, 1985)
- 「영태이년명 납석제호」(박경원·정원경, 『부산시립박물관연보』 6, 1983)
- 「신라 하대 비로자나불상조각의 연구(속) -신라하대 불교조각의 연구(2)-」(문명대, 『미술자료』 22,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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