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간석주는 보력(寶曆) 2년인 827년(흥덕왕 2)에 건립되었으며, 높이는 370㎝이고,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서쪽 석주의 외면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명문은 세로 176㎝, 너비 52㎝ 범위에 약 6㎝ 크기로 6행 123자가 음각되었다. 서체는 해서체이며, 찬자와 서자는 알 수 없다.
석주기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보력 2년 세차(歲次) 병오년 8월 6일 신축일에 중초사 동쪽 승악(僧岳)의 돌 하나가 갈라져 둘을 얻었다. 같은 달 28일에 두 무리가 옮기기 시작하여 9월 1일에 이곳에 이르렀으며, 정미년 2월 30일에 모두 마쳤다.
당시 절주통(節州統)은 황룡사(皇龍寺)의 항창화상(恒昌和上)이다. 상화상(上和上)은 진행(眞行法師)이며, 정좌(貞坐)는 의열(義說)법사이다. 상좌(上坐)는 연숭(年嵩)법사이고, 사사(史師)는 둘인데, 묘범(妙凡)법사와 칙영(則永)법사이다. 전도유내(典都唯乃)는 둘인데 창악(昌樂)법사와 법지(法智)법사이다. 도상(徒上)은 둘인데, 지생(智生)법사와 진방(眞方)법사이다. 작상(作上)은 수남(秀南)법사이다.
최근에 중초사지에서 ‘안양사(安養寺)’라고 쓰인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남북국시대 중초사와 고려시대 안양사와의 관계가 주목되고 있다.
석주기의 명문으로 인하여 당간석주가 위치한 절터가 중초사(中初寺)라는 사실과 더불어 당간석주는 827년(흥덕왕 2)에 건립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석주기는 당간석주의 조성에 관여한 승려들의 직책인 절주통(節州統)을 비롯하여 상화상(上和尙), 정좌(貞坐), 상좌(上坐), 사사(史師), 전도유내(典都唯乃) 등의 승관직이 기록되어 있어서 9세기 전반의 승관제(僧官制)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명문에는 당간석주의 건립에 소요되는 기간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고대 석조물의 건립과정뿐만 아니라 신라식의 속한문(俗漢文)을 혼용하고 있어 고대국어사의 연구에도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