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함은 1920년대 초에 일본인에 의해 삼층석탑 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1929년에 조선총독부에서 구입하여 박물관에 두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사리함의 형태는 납석제 원통형으로 함통(咸通) 8년인 867년(경문왕 7)에 제작되었으며, 높이는 10㎝, 둘레는 11㎝이다. 사리함의 주위 외면에는 16행 74자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고, 바닥면에도 4자의 명문이 있다.
사리함기의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승려 언부(彦傅)의 어머니 이름은 명단(明端)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이찬(伊湌) 김양종(金亮宗) 공(公)의 막내딸이다. 스스로 커다란 서원(誓願)을 발하여서 직접 불탑(佛塔)을 세워서 이미 정토(淨土)의 업(業)을 깨닫고 아울러 속세의 생령(生靈)들을 이롭게 하고자 하였다.
(언부는) 이 뜻을 효성스럽게 받들어서 이 탑을 세우고 불사리(佛舍利) 10개를 넣고 무구정경(無垢淨經)에 의한 법회(法會)를 열었다. 법회의 설법을 맡은 승려는 황룡사(皇龍寺)의 현구(現炬)이다.
당(唐) 함통 8년에 세운다.
(밑면)
돌을 다듬은 장인(匠人)은 신노(神孥)이다.
명문에 기록되어 있는 김양종(金亮宗)은 810년(헌덕왕 2) 봄 정월에 시중(侍中)이 되었다가 이듬해 봄 정월에 병으로 면직되었다.
취서사는 신라시대의 사찰로 추정되고 있는데, 창건과 폐사 시기는 기록이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으며, 1952년에 재건하였다.
신라 하대에는 취서사사리함을 비롯하여 이와 유사한 사리기와 무구정소탑(無垢淨小塔)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 당시 불교의 무구정탑 신앙의 유행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